저승에서 만난 스승과 아내
# 저승에서 만난 스승과 아내 , 죽음이 열어준 두 번째 삶의 길 『해동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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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 멘트 (300자 내외)
"여보, 나 먼저 가니 너무 슬퍼 마오. 그곳에서 우리 다시 만날 텐데 무엇이 두렵겠소."
평생토록 떠나간 아내만을 그리워하며 홀로 선비의 길을 걸어온 김 진사. 어느 늦겨울 밤, 그에게 마침내 피할 수 없는 손님이 찾아옵니다. 죽음이라는 차가운 문턱을 넘는 순간, 김 진사 앞에는 두려운 지옥 불 대신 생각지도 못한 아름다운 배움의 길과 눈물겨운 재회가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죽음은 끝이 아니라, 가장 그리운 이를 다시 만나러 가는 설레는 여정임을 보여주는 따뜻한 이야기. 오늘 밤, 당신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신비로운 저승 여행길로 함께 떠나보시죠.
디스크립션 (300자 내외)
조선 중기, 청렴하기로 소문난 김 진사는 젊은 날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평생을 학문과 나눔에 바치며 살아왔습니다. 노환으로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한 그에게 저승차사들이 찾아오지만, 그들은 김 진사를 죄인이 아닌 귀한 손님으로 모십니다. 저승으로 가는 길목에서 김 진사는 자신이 무심코 베풀었던 작은 선행들이 사후세계에서 어떤 보석이 되어 빛나는지 목격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수십 년을 기다려온 기적 같은 만남이 이루어지는데... 삶과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아름답고 평온한 판타지 야담입니다.
※ 노환으로 임종을 앞둔 김 진사, 아내의 유품을 만지며 지난 삶을 회고하다
조선 팔도에 흰 눈이 소복이 쌓이던 어느 깊은 겨울밤이었습니다. 강원도 산골 마을, 꼿꼿한 대나무처럼 평생을 청렴하게 살아온 김 진사의 사랑방에도 매서운 한기가 스며들고 있었습니다. 올해로 여든이 넘은 김 진사는 이제 스스로 몸을 일으키기도 버거울 만큼 기력이 쇠해 있었습니다.
방 안에는 희미한 호롱불 하나만이 위태롭게 흔들리며 김 진사의 주름진 얼굴을 비추고 있었지요. 그는 떨리는 손을 들어 머리맡에 놓인 작은 나무 상자를 더듬거렸습니다.
"쿨럭, 쿨럭... 임자, 보고 싶구려. 이제 정말 당신 곁으로 갈 때가 된 모양이오."
김 진사가 힘겹게 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 빛바랜 옥비녀 하나가 고이 담겨 있었습니다. 50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가 시집올 때 꽂고 왔던 그 비녀였습니다. 젊은 날, 열병으로 급작스레 아내를 잃은 후 김 진사는 재혼도 마다하고 홀로 살며 마을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가난한 이웃을 도우며 살아왔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살아있는 부처'라 불렀지만, 정작 김 진사의 마음 한구석에는 늘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이 구멍처럼 뚫려 있었지요.
창밖에서는 겨울바람이 대나무 숲을 흔들며 '쏴아아-' 하는 소리를 냈습니다. 그 소리가 마치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 같아 김 진사는 가만히 눈을 감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긴 세월이었지. 자네가 떠나고 강산이 다섯 번이나 변했어. 춥고 배고픈 날도 있었고, 외로움에 사무쳐 밤새 술잔을 기울이던 날도 있었지. 허나, 부끄럽게 살지는 않으려 노력했네. 자네를 다시 만났을 때, 당신 남편 참 잘 살다 왔소, 하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 말이야.'
김 진사는 비녀를 가슴에 품었습니다. 차가운 옥의 감촉이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방 안의 온기는 점점 식어가고 있었지만, 김 진사의 마음은 이상하리만치 평온해졌습니다. 죽음이 코앞에 닥쳤다는 것을 직감했지만,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앞섰습니다.
"여보... 오늘 밤은 유난히 달이 밝구려. 당신이 저 달을 타고 내려올 것만 같아."
김 진사의 호흡이 점점 얕아졌습니다. 평생을 짓눌러왔던 육신의 고통과 삶의 무게가 안개처럼 흩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는 마지막 힘을 다해 벽에 걸린 아내의 초상화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림 속의 아내는 여전히 열여덟 꽃다운 나이로 수줍게 웃고 있었지요.
"기다려 주시오. 내 이제... 무거운 옷을 벗고... 당신에게 가리다."
김 진사의 눈꺼풀이 천천히 내려앉았습니다. 방 안을 가득 채우던 약 냄새 대신, 어디선가 은은한 매화 향기가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그것은 이승의 향기가 아니었습니다. 바깥의 바람 소리가 잦아들고, 세상의 모든 소음이 사라진 고요 속에서 김 진사의 마지막 숨결이 허공으로 흩어졌습니다. 참으로 고요하고, 아름다운 떠남이었습니다.
※ 죽음의 순간 찾아온 저승차사들, 두려움이 아닌 예우를 갖춰 김 진사를 인도하다
김 진사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자신이 누워 있던 자리가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몸은 깃털처럼 가벼웠고, 쑤시던 허리와 무릎의 통증은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습니다. 방 안은 더 이상 어둡지 않았습니다. 마치 달빛이 방 안 가득 차오른 듯 은은한 푸른빛이 감돌고 있었지요.
그때, 방문이 스르르 열리며 검은 두루마기를 입은 세 사내가 들어왔습니다. 우리가 흔히 전설의 고향에서 보던 무시무시한 저승차사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눈빛만은 깊고 그윽했으며, 태도에는 기품이 서려 있었습니다.
가장 앞에 선 차사가 김 진사를 향해 정중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렸습니다.
"김 진사 어르신, 평안하셨습니까. 먼 길 떠나실 채비는 다 되셨는지요?"
김 진사는 당황하지 않고 덤덤하게 물었습니다.
"그대들은... 저승에서 오신 사자들인가요?"
"그렇습니다. 염라대왕님의 명을 받아 어르신을 모시러 왔습니다. 보통은 죄인을 잡아가듯 결박하여 모시는 것이 관례이나, 어르신께서는 이승에서 쌓으신 덕이 워낙 높으시어 저희가 가마를 대령하여 귀빈으로 모시라 명받았습니다."
김 진사는 허허 웃으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덕이라니요. 그저 남들 다 하는 도리를 지키며 살았을 뿐입니다. 가마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내 두 다리가 이리 멀쩡해졌는데 걸어서 가겠습니다."
차사들은 서로를 마주 보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역시 듣던 대로 겸손하십니다. 허나, 저승길은 이승의 길과는 다릅니다. 육신의 옷을 벗으셨으니 이제 영혼의 무게로 걸으셔야 합니다. 어르신은 영혼이 맑고 가벼우시니 걷는 것 또한 구름 위를 걷는 듯하실 겁니다."
김 진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육신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낡은 이불을 덮고 평온하게 잠든 듯 누워있는 늙은 자신의 모습. 그것은 마치 낡은 옷을 벗어둔 것과 같았습니다. 슬픔보다는 홀가분함이 느껴졌습니다.
"고생했다, 나의 육신아. 80년 세월 동안 나를 지탱해주어 고맙구나. 이제 흙으로 돌아가 편히 쉬거라."
김 진사는 자신의 육신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러자 차사가 김 진사에게 새하얀 두루마기를 건넸습니다.
"자, 이것을 입으시지요. 이승의 미련과 때가 묻은 옷 대신, 저승의 맑은 기운으로 지은 옷입니다."
김 진사가 그 옷을 입자, 온몸에서 따뜻한 기운이 솟아나며 정신이 더욱 맑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준비되셨으면 가시지요. 어르신께서 그토록 그리워하시던 분도 어르신을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그리워하던 분'이라는 말에 김 진사의 눈이 반짝였습니다.
"아, 내 아내가... 정말 나를 기다리고 있단 말이오?"
"그럼요. 저승의 시간은 이승과 달라 수십 년이 찰나와 같기도 하지만, 기다리는 마음만은 천년과도 같습니다. 어서 가시지요."
차사들의 안내를 받으며 김 진사는 방문을 나섰습니다. 문밖은 더 이상 추운 강원도 산골의 겨울이 아니었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신비로운 안개 속으로, 은은한 등불이 켜진 길이 나 있었습니다. 김 진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설레는 마음으로 그 길을 향해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여행의 시작이었습니다.
※ 이승의 무거운 짐을 벗어던지고, 아름다운 꽃이 핀 저승길을 가볍게 걷다
문지방을 넘어선 김 진사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실로 기이하고도 아름다웠습니다. 흔히들 저승길이라 하면 칠흑 같은 어둠과 스산한 바람이 부는 황천길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김 진사가 걷고 있는 이 길은 마치 봄날의 화원과도 같았습니다. 발아래에는 이승에서는 본 적 없는 오묘한 빛깔의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고, 공기 중에는 머리를 맑게 해주는 은은한 향기가 감돌았습니다.
김 진사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끝에서 전해지는 푹신하고 따스한 감촉에 감탄했습니다.
"허허... 참으로 신기하구려. 내 평생 책을 읽으며 상상했던 무릉도원이 바로 이런 곳이 아닐까 싶소. 차사 양반, 이 꽃들은 대체 이름이 무엇이오?"
앞장서 걷던 차사가 뒤를 돌아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습니다.
"이 꽃들은 '서천꽃밭'의 씨앗이 어르신의 발자국을 따라 피어난 것입니다. 이승에서 사시는 동안 어르신께서 베푸셨던 따뜻한 말 한마디, 배고픈 이에게 건넨 밥 한 숟가락, 그리고 홀로 삼키셨던 인내의 눈물들이 거름이 되어 이렇게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난 것이지요. 악한 삶을 산 자의 길에는 가시덤불이 우거지지만, 어르신의 길은 이토록 향기롭습니다."
김 진사는 쑥스러움에 헛기침을 했습니다. 자신이 무심코 했던 행동들이 저승길의 꽃이 되었다니,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저 멀리서 찬란하게 빛나는 강물이 보였습니다. 그 유명한 '삼도천'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강물 또한 두려운 검은 물이 아니라, 마치 은하수를 녹여 놓은 듯 반짝이는 금빛 물결이었습니다.
강가에는 자그마한 나룻배 한 척이 기다리고 있었고, 흰수염이 성성한 뱃사공이 김 진사를 향해 고개를 숙였습니다.
"오셨습니까. 귀한 손님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김 진사가 배에 오르자, 나룻배는 노도 젓지 않았는데 스스로 물살을 가르며 미끄러지듯 나아갔습니다. 강 한가운데 이르러 김 진사는 문득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저 멀리 안개 속에 희미하게 자신이 살던 마을, 그리고 평생을 지켜온 작은 초가집이 보였습니다.
"아..."
김 진사의 입에서 짧은 탄식이 흘러나왔습니다. 미련이라기보다는, 고단했던 한 생애에 대한 연민과 작별의 인사였습니다. 차사가 김 진사의 곁으로 다가와 조용히 말했습니다.
"돌아보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르신께서 저곳에 남기신 것은 빈 껍데기와 슬픔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속에 심어놓은 사랑의 씨앗들입니다. 그것들은 어르신이 없어도 스스로 자라나 숲을 이루겠지요. 이제 무거웠던 이승의 기억은 이 강물에 띄워 보내십시오."
김 진사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는 마음속에 남아있던 마지막 걱정과 근심을 한 줌의 숨으로 뱉어내어 강물 위로 날려 보냈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몸이 한결 더 가벼워지며, 영혼이 투명해지는 듯한 해방감이 밀려왔습니다.
"가볍구나... 정말 가벼워. 평생 나를 짓누르던 책임감도, 체면도, 늙고 병든 육신의 고통도 다 사라졌어."
나룻배는 어느새 강 건너편에 닿았습니다. 그곳은 눈부신 광명으로 가득 차 있었고, 김 진사는 마치 고향 집에 돌아온 듯한 포근함을 느꼈습니다. 죽음이라는 강을 건너왔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라 진정한 안식처로 향하는 첫 번째 관문이었습니다.
※ 명부전에서 자신의 인생이 기록된 책을 보며, 선행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다
강을 건너 당도한 곳은 웅장한 기와집들이 즐비한 명부전(冥府殿)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죄인들을 심판하고 벌을 주는 무시무시한 법정이 아니었습니다. 높다란 천장까지 수만 권의 책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는, 고요하고 엄숙한 거대한 도서관과 같았습니다.
"이곳은 '업보의 도서관'입니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이승을 다녀간 모든 사람들의 삶이 기록된 곳이지요."
차사의 안내를 받아 들어선 김 진사는 압도적인 풍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서가 사이사이에는 학자처럼 보이는 관리들이 붓을 들고 바쁘게 무언가를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차사는 그중 황금색으로 장정된 두툼한 책 한 권을 꺼내어 김 진사에게 건넸습니다.
"이것이 바로 김 진사 어르신의 '인생록'입니다. 한번 펼쳐 보시지요."
김 진사는 떨리는 손으로 책장을 넘겼습니다. 그러자 책 속의 글자들이 살아 움직이며, 지난 80년 세월의 풍경들이 생생한 그림처럼 피어올랐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 품에 안겨 듣던 자장가 소리, 서당에서 처음 붓을 잡던 날의 설렘, 그리고 아내와 처음 만나 수줍게 눈을 맞추던 순간까지... 잊고 지냈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김 진사가 놀란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자신이 생각기에 큰 업적이라 여겼던 일들, 예컨대 과거 시험에 합격했던 일이나 높은 벼슬을 마다하고 낙향했던 일 등은 책에 아주 짧게, 혹은 흐릿하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반면, 김 진사가 기억조차 하지 못했던 아주 사소한 순간들은 눈부신 황금색 글씨로 적혀 빛나고 있었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장터에서 떨고 있는 거지 아이에게 자신의 목도리를 둘러주던 장면. 글을 모르는 까막눈 할머니를 위해 밤새 편지를 대필해 주던 장면. 홍수가 났을 때 떠내려가는 강아지를 구하기 위해 물에 뛰어들었던 장면...
"이... 이건 너무나 사소한 일들이 아닙니까. 내세울 것도 없는 부끄러운 일들인데, 어찌 이것들이 이토록 크게 기록되어 있단 말입니까?"
김 진사의 물음에, 도서관을 관리하는 판관이 다가와 인자한 목소리로 답했습니다.
"어르신, 저승의 저울은 이승의 저울과 다릅니다. 이승에서는 벼슬의 높낮이나 재물의 많고 적음으로 사람을 평가하지만, 이곳에서는 '진심'의 무게만을 잽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선행은 깃털보다 가볍지만,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진심으로 행한 작은 친절은 태산보다 무겁지요."
판관은 책의 한 페이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습니다. 그곳에는 김 진사가 젊은 시절, 아내를 잃고 슬픔에 빠져 있을 때의 기록이 있었습니다. 술에 취해 길가에 핀 이름 모를 들꽃을 밟지 않으려 비틀거리며 피해 가던 모습이었습니다.
"보십시오. 슬픔에 잠겨 자신을 돌보기도 힘들었던 순간에도, 어르신은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우주는 바로 이런 순간들을 가장 귀한 보석으로 기억한답니다."
김 진사는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자신은 평생 부족한 사람이라 자책하며 살았는데, 하늘은 자신의 작은 몸짓 하나하나를 이토록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헛살지 않았군요. 내 삶이... 쓸모없는 것만은 아니었군요."
"그렇습니다. 어르신의 삶은 그 자체로 훌륭한 책이었습니다."
김 진사는 책을 가슴에 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것은 회한의 눈물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긍정하고 위로받는 치유의 눈물이었습니다. 도서관의 묵은 종이 냄새가 마치 오래된 친구의 품처럼 김 진사를 포근하게 감싸 안았습니다. 이제 김 진사는 자신의 삶에 대해 완전한 확신을 가지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준비를 마쳤습니다.
※ 심판이 아닌 칭송의 자리, 염라대왕에게 삶을 잘 살아냈다는 인정을 받다
차사의 안내를 받아 김 진사가 당도한 곳은 명부전의 가장 깊은 곳, 염라대왕이 머무는 대전(大殿)이었습니다. 그곳은 인간의 언어로는 감히 형용할 수 없는 장엄함이 서려 있었습니다. 천장은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높았는데, 마치 밤하늘의 은하수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수억 개의 별들이 반짝이며 영롱한 빛을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바닥은 투명한 수정으로 되어 있어, 발을 디딜 때마다 우주의 맑은 기운이 발바닥을 통해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듯했습니다.
저만치 높은 단상 위에, 전설 속에서나 듣던 염라대왕이 앉아 있었습니다. 붉은 관복을 입고 긴 수염을 늘어뜨린 그의 모습은 태산처럼 거대하고 위엄이 넘쳤으나, 김 진사가 상상했던 무시무시한 심판관의 모습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의 눈빛은 세상을 통달한 현자의 것처럼 깊고 그윽했으며, 입가에는 자애로운 할아버지와 같은 온화한 미소가 감돌고 있었습니다.
김 진사가 단상 아래 엎드려 깊은 절을 올리자, 염라대왕의 목소리가 대전을 웅장하게 울렸습니다. 그것은 천둥소리 같으면서도 봄바람처럼 부드러운 목소리였습니다.
"어서 오시게. 강원도 산골에서 온 김 진사,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았네. 고개를 드시오."
김 진사가 조심스레 고개를 들자, 염라대왕은 김 진사의 인생이 기록된 두툼한 황금 책을 펼쳐 들고 천천히 읽어 내려갔습니다.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가 마치 파도 소리처럼 시원하게 들렸습니다.
"허허... 자네의 기록은 참으로 향기롭구먼. 이곳에 오는 수많은 영혼들의 책에서는 욕심의 냄새나 회한의 냄새가 나기 마련인데, 자네의 책에서는 묵은 난초 향기가 나는구나."
염라대왕은 안경을 고쳐 쓰며 말을 이었습니다.
"남들은 벼슬을 얻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을 때, 자네는 병든 아내를 살리기 위해 밤새 험한 산을 오르며 약초를 캤어. 또 아내를 먼저 보낸 후에는 그 슬픔을 술과 방탕함으로 달래는 대신, 글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학문을 가르치고 배고픈 이웃에게 쌀독을 비워주는 것으로 승화시켰지. 자네가 흘린 눈물은 땅을 적시는 단비가 되었고, 자네가 내쉰 한숨은 누군가의 언 손을 녹이는 입김이 되었어."
김 진사는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황공하옵니다, 대왕님. 저는 그저 하루하루 제게 주어진 몫을 살았을 뿐입니다. 때로는 외로움에 사무쳐 하늘을 원망한 적도 있었고, 제 처지가 처량하여 남몰래 이불속에서 운 적도 많습니다. 부끄러운 삶이었습니다."
"허허, 그 원망조차도 그리움이라는 사랑의 또 다른 이름 아니겠는가. 인간이기에 가질 수 있는 그 애달픈 마음조차 자네는 아름답게 가꾸었네. 자네는 스스로를 작고 초라하다 여겼을지 모르나, 자네가 베푼 선행의 씨앗들은 지금도 이승에서 숲을 이루고 있네. 자네가 가르친 아이들이 자라나 또 다른 아이들을 돕고 있으니, 자네의 삶은 육신의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것일세."
염라대왕은 옆에 놓인 옥새를 들어 김 진사의 책 마지막 페이지에 '쾅' 하고 붉은 도장을 찍었습니다. 그 소리는 심판의 판결이 아니라, 훌륭한 삶을 살아낸 이에 대한 '졸업장'이자 '표창장'을 수여하는 축포와도 같았습니다.
"김 진사, 그대는 지옥의 형벌도, 다시 고통받아야 할 축생의 윤회도 필요 없네. 이제 모든 짐을 내려놓고, 그대가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곳, 가장 그리운 사람이 기다리는 '극락의 정원'으로 가시게. 이것이 자네의 80년 삶에 대한 나의 판결이자, 하늘이 주는 선물이네."
그 순간, 대전 안에 있던 모든 판관과 차사들이 일제히 김 진사를 향해 존경의 눈빛으로 고개를 숙였습니다. 허공에서는 꽃비가 내리고, 어디선가 천상의 음악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김 진사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염라대왕에게 깊은 감사의 절을 올렸습니다. 두려움으로 시작했던 저승길이, 이토록 영광스러운 칭송의 자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입니다. 평생을 외롭게, 그러나 바르게 살아온 그의 삶이 비로소 완성되는 순간이었습니다.
※ 모든 절차를 마치고, 가장 그리운 사람이 기다리는 '재회의 정원'으로 향하다
염라대왕의 대전을 나온 김 진사는 차사의 안내도 없이,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본능이 이끄는 대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어느새 그의 발길이 닿은 곳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정원이었습니다.
이곳은 계절이 없는 곳이라 했으나, 김 진사가 느끼기에는 가장 찬란한 봄날의 한가운데 같았습니다. 흐드러지게 핀 매화꽃잎이 눈처럼 흩날리고, 이름 모를 파랑새들이 오색빛깔 날개를 펄럭이며 나뭇가지 사이를 오가고 있었습니다. 공기는 달콤했고, 햇살은 어머니의 손길처럼 따스하게 김 진사의 어깨를 감싸 안았습니다.
김 진사가 징검다리를 건너 맑은 연못 쪽으로 향할 때였습니다. 목을 축이려 연못에 고개를 숙인 그는, 수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뒷걸음질 쳤습니다.
"이게... 이게 대체 누구란 말인가? 나란 말인가?"
연못 속에 비친 남자는 백발이 성성하고 주름진 노인이 아니었습니다. 쭈글쭈글하던 주름살, 희끗희끗하던 머리카락, 굽었던 등은 온데간데없고, 가장 건강하고 혈기 왕성했던, 눈동자가 샛별처럼 빛나던 20대 청년의 모습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김 진사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만져보았습니다. 탱탱한 피부와 힘이 넘치는 팔다리. 육신의 껍데기를 벗어던진 영혼은 늙지도, 병들지도 않는다는 것을 몸소 깨달은 것입니다. 80년의 세월 동안 짊어지고 있던 노화와 통증이라는 짐이 순식간에 사라진 해방감에 김 진사는 어린아이처럼 제자리에서 펄쩍 뛰어보았습니다.
"허허! 내 몸이 깃털 같구나! 다시 청춘으로 돌아왔어!"
그는 다시 소년처럼 들뜬 마음으로, 그러나 한편으로는 묘한 긴장감을 안고 정원 깊숙한 곳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심장이 터질 듯 쿵쾅거렸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익숙하고도 사무치게 그리운 향기가 봄바람을 타고 날아왔습니다. 그것은 50년 전, 가난했던 시절 아내가 정성스레 빗어 넘긴 머리에서 나던 동백기름 냄새 같기도 하고, 봄이면 들판에 나가 캐오던 향긋한 쑥국 냄새 같기도 했습니다. 김 진사의 발걸음이 빨라졌습니다.
"임자... 혹시, 거기 있소? 내 목소리가 들리오?"
정원 한가운데, 만발한 홍매화 나무 아래 누군가 서 있었습니다. 옥색 치마저고리를 곱게 차려입고, 뒷짐을 진 채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 여인의 뒷모습. 세월이 흘러도, 강산이 변해도, 죽어서 백골이 된다 해도 절대 잊을 수 없는, 꿈에서도 그리던 바로 그 뒷모습이었습니다.
김 진사는 숨이 멎을 것만 같았습니다. 목구멍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어 올랐습니다. 한 발자국, 또 한 발자국. 다가가는 걸음마다 50년의 그리움이 눈물방울이 되어 툭, 툭 떨어졌습니다.
"여보..."
김 진사의 떨리는 목소리가 허공을 갈랐습니다. 그 소리에 매화꽃잎이 우수수 떨어지며, 여인이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50년 전, 병마와 싸우느라 야위고 창백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시집오던 날처럼 발그레한 볼과 수줍음 가득한 눈망울을 가진 아내가 그곳에 서 있었습니다.
그녀는 김 진사를 보고 놀라지 않았습니다. 마치 어제 헤어진 사람을 오늘 다시 만나는 것처럼, 혹은 잠시 장터에 다녀온 남편을 마중 나온 아내처럼 환하고 따뜻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제 오십니까. 제가 조금 늦으실 거라고, 천천히 오시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한마디에 50년의 세월이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김 진사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아내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 젊은 날의 모습으로 기다리던 아내와의 눈물겨운 상봉과 영원한 평화
"임자! 아, 나의 임자!"
김 진사는 와락 아내를 끌어안았습니다. 영혼이라 만질 수 없을 줄 알았는데, 품에 안긴 아내의 온기는 이승의 그 어떤 것보다 따뜻하고 생생했습니다. 아니, 살아서 안아보았던 그 어떤 순간보다도 더 깊은 사랑이 전해져 왔습니다. 두 사람은 흩날리는 매화나무 아래서 하염없이 서로를 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것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기나긴 기다림 끝에 찾아온 기적 같은 환희의 눈물이었습니다.
김 진사는 아내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 쳐다보았습니다.
"정말 당신이구려. 꿈이 아니야. 미안하오. 너무 늦게 왔지? 나 혼자 살겠다고, 그 긴 세월을 버티다 이제야 왔구려. 당신 혼자 이 먼 곳에서 얼마나 외로웠겠소. 나를 원망하며 기다리진 않았소?"
김 진사가 젖은 목소리로 사과하자, 아내는 고운 손을 들어 남편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었습니다. 그 손길은 50년 전 열병을 앓던 김 진사의 이마를 짚어주던 그때처럼 다정했습니다.
"아니옵니다, 서방님. 저는 한순간도 외롭지 않았습니다. 서방님이 이승에서 보내주시는 마음을 매일매일 받고 있었는걸요."
"그게 무슨 말이오?"
아내는 빙그레 웃으며 주변에 핀 꽃들을 가리켰습니다.
"서방님이 좋은 일을 하실 때마다 이곳 제 화단에 꽃 한 송이가 피어나고, 서방님이 저를 생각하며 밤하늘을 올려다보실 때마다 이곳에 반짝이는 별이 하나씩 늘어났습니다. 서방님이 흘리신 눈물은 이곳의 단비가 되어 나무를 자라게 했지요. 서방님은 몸만 떨어져 있었을 뿐, 마음은 늘 저와 함께 계셨습니다. 보십시오. 서방님이 만들어주신 이 정원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내의 말에 김 진사는 가슴이 먹먹해져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죽음이 갈라놓은 줄 알았던 50년 세월이 사실은 서로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을, 진정한 사랑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닿아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고맙소... 정말 고맙소. 나를 지켜봐 주고, 나를 기다려줘서."
"보세요, 서방님. 당신 모습이 얼마나 늠름하고 멋진지. 제가 처음 반했던 그 시절, 그 모습 그대로이십니다. 아니, 그때보다 훨씬 더 깊고 인자한 눈빛을 가지셨습니다."
"당신이야말로 선녀가 따로 없구려. 우리 다시 만났으니, 이제는 절대 헤어지지 맙시다. 다시는 아프지도 말고, 늙지도 말고, 먼저 떠나지도 말고... 천년만년 이렇게 마주 보며 삽시다."
"예, 서방님. 이곳에는 이별도 없고, 고통도 없습니다. 그저 영원한 평화와 우리가 못다 한 사랑만 있을 뿐이지요. 자, 가시지요. 제가 우리 살 집을 마련해 두었습니다. 서방님이 좋아하시는 대나무 숲이 보이고,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제가 맛있는 쑥국을 끓여 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은 젊은 날의 연인처럼 손을 꼭 잡았습니다. 맞잡은 두 손에서 따뜻한 황금빛이 뿜어져 나왔습니다. 그들은 꽃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그들의 뒷모습 위로 따스한 축복의 햇살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이승에서의 김 진사는 낡은 초가집에서 쓸쓸히 숨을 거두었지만, 저승에서의 김 진사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영원한 행복의 나라로 힘찬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삶이라는 긴 소풍을 무사히 마치고, 마침내 진짜 집으로 돌아온 아이처럼, 그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하고 행복해 보였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재회의 시작이었습니다.
유튜브 엔딩 멘트
여러분, 오늘 들려드린 김 진사의 이야기, 어떠셨나요?
우리는 종종 죽음을 두려워하고, 떠나간 이들과의 이별을 영원한 슬픔이라 여기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오늘 이야기처럼, 죽음은 캄캄한 어둠이 아니라 고단했던 옷을 벗고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 길의 끝에는 우리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사람들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곁에 없는 소중한 사람이 사무치게 그리운 밤이라면, 슬퍼하기보다는 따뜻한 미소를 지어보세요. 여러분의 그 마음이 하늘에 닿아 예쁜 꽃으로 피어나고 있을 테니까요. 언젠가 우리도 김 진사처럼 "나 잘 살다 왔소" 하며 반가운 재회를 할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오늘 밤은 모든 걱정 내려놓으시고, 그리운 얼굴들을 꿈속에서 만나는 행복한 잠 청하시길 바랍니다. 이 이야기가 여러분의 밤에 작은 위로가 되었기를 바라며, 구독과 좋아요 꾹 눌러주시면 더 따뜻한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