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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두려워하지 않는 할머니

황금 인생 21 2026. 7. 19.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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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두려워하지 않는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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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272자)

여든다섯 살 할머니가 저승사자에게 내기를 걸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데리러 온 저승사자에게 차 한 잔을 권하고, 도리어 "누가 더 지혜로운지 겨뤄 보자"며 승부를 청한 담양 고을 윤씨 할머니. 수백 년을 살아온 저승사자도 쩔쩔매게 만든 할머니의 세 가지 물음, 그리고 그 내기 뒤에 숨겨진 놀라운 진짜 속뜻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염라대왕마저 하늘에서 지켜보다 감탄했다는 이 신비로운 이야기가, 나이 듦의 아름다움과 참된 지혜가 무엇인지 조용히 일깨워 드립니다. 웃음과 감동이 함께하는 특별한 옛이야기, 지금 만나 보세요.

※ 1: 지혜로운 할머니 저승사자를 만나다

전라도 담양 땅, 대숲이 바람에 서걱이는 작은 고을에 윤씨 할머니라는 분이 살고 계셨더랍니다. 올해로 여든다섯,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으셨지만 정신은 물처럼 맑고 몸도 정정하셨지요. 아침이면 손수 마당을 쓸고, 낮이면 텃밭을 매고, 저녁이면 마루에 앉아 붓을 드셨습니다.

무엇보다 이 할머니는 평생 배움의 손을 놓지 않으신 분이었습니다. 젊어서는 한문을 익히셨고, 중년에는 온갖 약초와 의술을 파고드셨으며, 늘그막에는 사람의 마음과 세상 이치를 궁리하셨지요. 여든다섯이 되도록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쓰는 것이 할머니의 오랜 버릇이었습니다.

"오늘도 또 하루가 저물어가는구나." 할머니는 저녁 무렵 마루에 앉아 먹을 갈며 혼잣말을 하셨습니다. 그러고는 종이 위에 또박또박 붓을 놀리셨지요. "오늘은 손자 봉이에게 천자문을 가르쳐 주었고, 며느리에게는 감기에 잘 듣는 탕약 끓이는 법을 일러 주었네."

할머니의 집은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배가 아프고 열이 나는 이들이 약을 물으러 왔고, 젊은 어미들은 아이 키우는 걱정을 안고 왔으며, 마을 아이들은 글을 배우러 몰려들었지요. 할머니는 그 누구도 그냥 돌려보내는 법이 없으셨습니다. 오는 이마다 따뜻한 아랫목에 앉히고, 자신이 아는 것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셨습니다.

"할머니는 참말로 모르는 게 없으세요!" 마을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면 할머니는 언제나 손사래를 치며 웃으셨지요. "아니야, 아니야. 내가 아는 건 저 넓은 바다에 떨어진 물 한 방울일 뿐이야. 여든다섯을 살고도 아직 배울 게 산더미란다."

그날 밤도 할머니는 평소처럼 마루에 앉아 별을 헤아리며 차를 마시고 계셨습니다. 담양의 밤하늘은 유난히 별이 총총했지요. 여든다섯 해를 살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을 보아 왔건만, 밤하늘은 여전히 신비로웠습니다. '참 많이도 살았구나. 그런데도 세상엔 아직 신기한 일이 이리 많으니.' 할머니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셨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난데없이 차가운 바람 한 줄기가 마당을 훑고 지나갔습니다. 여느 밤바람과는 다른, 등골이 서늘해지는 낯선 기운이 서린 바람이었지요. 할머니는 조용히 찻잔을 내려놓고 마당을 둘러보셨습니다. 대숲이 우수수 흔들리는 그 너머, 마당 한켠에 검은 도포를 걸치고 검은 갓을 눌러쓴 키 큰 사내가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낯빛은 서리처럼 창백하고, 손에는 서슬 퍼런 낫 한 자루가 들려 있었지요.

"뉘시오?" 할머니가 놀라는 기색도 없이 차분하게 물으셨습니다. 여든다섯 해를 살다 보면 어지간한 일에는 가슴이 덜컹하지 않는 법이니까요. "나는 저승사자다." 그 사내가 낮고 음산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윤씨 할멈, 그대를 데리러 왔다."

"아, 드디어 내 차례가 왔구먼." 할머니는 뜻밖에도 태연하셨습니다. 오히려 반가운 손님이라도 맞은 듯 빙그레 웃으셨지요. "그런데 젊은 양반, 참 늦게도 오셨네. 나는 벌써 몇 해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는데." 저승사자는 이 당당한 반응에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기다리고 있었다고?" "그럼. 여든다섯을 살았으면 언제 떠나도 이상할 게 없지. 갈 채비쯤은 진작에 해 두었다오. 그나저나 젊은 양반은 나이가 어찌 되시나?" 할머니가 도리어 저승사자에게 물음을 던지셨습니다. "나는… 나는 수백 년을 살아왔다."

"수백 년이라. 그럼 나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고 계시겠구려?" 할머니의 눈이 아이처럼 반짝였습니다. "당연하다." 저승사자가 자신 있게 대답했지요. "나는 저승의 온갖 비밀을 다 알고 있다." "저런, 그럼 정말 똑똑하시겠네." 할머니가 감탄하는 척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그런데 젊은 양반, 바쁘시겠지만 잠깐 이 늙은이 곁에 앉아 이야기나 나누다 가지 않으려오? 차라도 한 잔 하면서 말이오." "차라고?" 저승사자는 어리둥절했습니다. 수백 년을 저승사자로 살아오는 동안, 자신에게 차를 권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요.

"그렇소, 차 말이오. 여든다섯 해를 살며 터득한, 나만의 특별한 차 우리는 법이 있다오." 할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에서 찻주전자를 들고 나오셨습니다. "젊은 양반도 차 맛은 알 테지?" "나는… 그런 건 필요 없다." "필요야 없어도, 맛이야 볼 수 있잖소."

할머니는 정성스레 찻잎을 우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찻잔을 저승사자 앞에 밀어 놓으셨습니다. 향긋한 차 냄새가 서늘하던 마당에 은은히 번졌지요. 저승사자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홀리듯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넘겼습니다. "이… 이 맛은…" "어떻소? 맛이 괜찮지?"

정말이지 맛이 좋았습니다. 저승사자는 이토록 따스하고 향긋한 차를 여태 마셔 본 적이 없었지요. "할멈, 이 차는 대체 어찌…" "그건 비밀이라오. 여든다섯 해를 두고 갈고닦은 솜씨거든. 찻잎을 고르는 눈부터 물의 온도, 우려내는 시간까지 어느 하나 허투루 할 게 없지."

저승사자는 차를 마시며 참으로 야릇한 기분에 잠겼습니다. 얼어붙었던 가슴 한켠이 스르르 녹아내리고, 온몸이 노곤하게 따뜻해지는 느낌이었지요. "할멈… 당신은 참 별난 사람이오." "별날 게 뭐 있소. 그저 오래 산 늙은이일 뿐이지."

"허나…" 저승사자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습니다. "내 일은 해야 한다. 할멈을 저승으로 데려가야 해." "알겠소. 헌데 떠나기 전에, 이 늙은이가 한 가지만 청해도 되겠소?" 할머니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냐?" "젊은 양반과 내기를 하나 해 보고 싶구려." 그 말에 저승사자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내기라니?" "그렇소. 수백 년을 산 젊은 양반과, 여든다섯을 산 이 늙은이 중에 누가 더 지혜로운지 한번 겨뤄 보자는 거요."

※ 2: 여든다섯 늙은이와 수백 년 저승사자의 지혜 대결

"내기를 하자고?" 저승사자는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할멈, 나는 저승사자다. 한낱 사람과 내기 따위를 하는 존재가 아니야." "어째서 안 된다는 거요? 혹시 이 늙은이한테 질까 봐 겁이 나서 그러는 거 아니오?" 할머니가 장난스럽게 눈을 흘기며 웃으셨습니다.

그 말에 저승사자의 자존심이 은근히 긁혔습니다. "무슨 소리냐! 내가 사람 할멈 하나한테 질 리가…" "그럼 해 봅시다!" 할머니가 손뼉을 짝 치셨습니다. "수백 년 산 젊은 양반과 여든다섯 산 늙은이 중에, 누가 더 지혜로운지 어디 한번 가려 보자니까." "허나…" 저승사자가 여전히 망설였습니다. "내기를 한다고 해서 내 임무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할멈은 어차피 저승으로 가야 해."

"물론 그렇지요. 이 늙은이도 그쯤은 잘 알고 있소." 할머니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그저 떠나기 전에, 재미난 일을 하나 벌여 보고 싶을 뿐이라오. 여든다섯 해를 살았어도 저승사자와 내기를 해 보는 건 처음이니 말이오." 할머니의 태도가 어찌나 당당한지, 저승사자는 저도 모르게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그럼… 만약 내기를 한다면 어떤 식으로 하겠다는 거냐?" "간단하오. 서로 문제를 내서 맞히는 거요. 각자 세 문제씩 내고, 더 많이 맞히는 쪽이 이기는 거지." "그래서, 할멈이 이기면 무엇을 바라느냐?" 저승사자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물었습니다. 할머니는 잠시 생각에 잠기시더니 천천히 입을 여셨습니다. "내가 이기면… 젊은 양반이 나에게서 한 가지를 배워 가는 거요."

"배워 간다고?" 저승사자는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여느 사람들은 하나같이 수명을 늘려 달라, 저승에 데려가지 말아 달라 애원하기 바쁜데, 이 할머니는 도리어 무언가를 가르쳐 주겠다니 말입니다. "대체 무엇을 가르쳐 주겠다는 거냐?" "그건 내가 이기거든 그때 알려 주리다." 할머니가 신비롭게 웃으셨습니다. "그럼 반대로, 내가 이기면?" "젊은 양반이 이기면, 이 늙은이는 군말 없이 따라나서리다. 순순히 말이오."

할머니의 제안은 저승사자에게 그리 나쁘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흥미롭군." 저승사자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좋다. 그 내기, 받아들이겠다. 허나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무엇이오?" "만약 내가 이기면, 할멈은 이 일을 다른 이들에게 발설해서는 안 된다. 저승사자가 사람과 내기를 했다는 소문이 돌면 곤란해지거든." "알겠소. 입 꼭 다물리다." 할머니가 선선히 응하셨습니다.

"그럼 시작해 볼까? 누가 먼저 문제를 낼 텐가?" "젊은 양반이 그리 자신 있으면, 이 늙은이가 먼저 내리다." 할머니가 여유롭게 말씀하셨습니다. 저승사자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지요. '수백 년을 살며 쌓은 지식이면 여든다섯 늙은이쯤이야 손쉽게 이기고도 남지.' 그렇게 생각하며 팔짱을 꼈습니다.

"좋소." 할머니가 눈을 반짝이며 첫 번째 문제를 던지셨습니다. "젊은 양반, 이 세상에서 가장 빠른 것이 무엇이겠소?" 저승사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습니다. "그야 바람이지! 바람보다 빠른 것이 어디 있겠느냐." "틀렸소." 할머니가 조용히 고개를 저으셨습니다. "뭐라? 그럼 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저승사자가 눈살을 찌푸렸습니다.

"바로 사람의 생각이오." 할머니가 빙그레 웃으셨습니다. "생각이란 눈 깜짝할 사이에 천 리를 내닫지. 아득한 옛날로 거슬러 갔다가, 다시 오지 않은 훗날로 훌쩍 날아가기도 하고 말이오. 바람 따위는 감히 그 발끝도 못 따라가지." 저승사자는 그만 할 말을 잃었습니다. 참으로 그럴듯한 답이었으니까요. '허, 이 늙은이가…'

"그럼… 이제 내 차례다." 저승사자가 한참을 궁리하더니 문제를 냈습니다. "할멈, 죽음과 삶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소중하겠느냐?" 이번에는 저승에 얽힌 깊은 물음을 던지면 할머니가 쉬 답하지 못하리라 여긴 것이지요. 헌데 할머니는 잠시 생각하시더니 도리어 웃으며 대답하셨습니다.

"둘 다 소중하지요." 할머니의 목소리는 잔잔했습니다. "죽음이 있기에 삶이 소중하고, 삶이 있기에 죽음이 비로소 뜻을 갖는 법이오. 어느 하나만으로는 온전할 수가 없지. 밤이 있어야 낮이 반갑고, 겨울이 있어야 봄이 그리운 것과 같은 이치라오." 저승사자는 또 한 번 가슴이 서늘해졌습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답이었지요. "할멈… 놀랍군."

"이제 다시 내 차례요. 두 번째 문제." 할머니가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이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은 무엇이겠소?" 저승사자는 이번에는 섣불리 답하지 않고 신중히 궁리했습니다. "음… 물이 아니겠느냐? 물은 바위도 뚫고, 산도 깎아 내리니 말이다." "썩 좋은 답이오. 허나 그것도 틀렸소." 할머니가 다시 고개를 저으셨습니다. "그럼 대체 무엇이냐?"

"바로 인내라오." 할머니의 눈빛이 깊어졌습니다. "인내는 이 세상 그 무엇이든 끝내 이겨 내지. 물이 바위를 뚫는 것도 오랜 세월을 참고 또 참았기 때문이고, 바람이 산을 깎는 것도 수천 년을 묵묵히 견뎠기 때문이오. 급한 힘은 잠깐이나, 참는 힘은 영원하지." 저승사자는 그 말에 깊이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인내라….' 자신 또한 수백 년을 한결같이 같은 일을 되풀이하며 견뎌 왔건만, 그것이 곧 강함이라는 생각은 여태 해 본 적이 없었지요.

"그럼 이번엔 내 두 번째 문제다." 저승사자가 말했습니다. "할멈, 저승과 이승 중에서 어디가 더 좋은 곳이겠느냐?" 이번만큼은 결코 쉬 답하지 못하리라 확신했습니다. 헌데 할머니는 그저 잔잔히 미소 지으며 대답하셨지요. "그건 마음에 달린 게요. 이승에서 실컷 사랑하고 넉넉히 행복했던 이에게는 저승이 설레는 새 여정이 될 테고, 이승에 아직 못다 한 정이 남은 이에게는 이승이 더 애틋하겠지. 좋고 나쁨은 땅이 정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 마음이 정하는 법이라오." 저승사자는 그만 완전히 압도당하고 말았습니다. 자신조차 미처 헤아려 본 적 없는 깊은 답이었으니까요. '두 문제 모두 내가 졌구나.' 이제 점수는 어느새 이 대 영, 할머니가 저만치 앞서 있었습니다.

※ 3: 완패한 저승사자, 그리고 하늘이 열리다

"이제 마지막 문제요." 할머니가 자세를 고쳐 앉으며 진지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젊은 양반, 진정한 승리란 대체 무엇이겠소?" 이 물음 앞에서 저승사자는 한참을 골똘히 생각에 잠겼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문제였지요. 승리라는 것은… "상대를 남김없이 짓밟아 이기는 것?" "틀렸소." 할머니가 나직이 고개를 저으셨습니다.

저승사자는 그만 낯빛이 흐려졌습니다. 이제 자신은 할머니가 낸 세 문제를 죄다 틀린 셈이었으니까요. "그럼… 그럼 진정한 승리란 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진정한 승리란, 이기고 지는 것을 훌쩍 넘어서는 데 있다오." 할머니의 목소리가 따스했습니다. "서로가 배우고 함께 자라나는 것, 나도 상대도 모두 어제보다 나은 존재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참된 승리지. 한쪽만 이기고 한쪽은 무너지는 승부는, 결국 둘 다 지는 것이나 다름없소."

그 답을 들은 저승사자는 가슴 깊은 곳이 뭉클해졌습니다. 여태껏 승리란 그저 상대를 꺾고 짓누르는 것이라 여겨 왔건만, 할머니의 눈은 전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지요. "할멈… 참으로 지혜로우시오."

"그럼 이제 젊은 양반 차례요. 마지막 문제를 내 보시구려." 할머니가 격려하듯 말씀하셨습니다. 저승사자는 마지막 문제만큼은 기어이 맞혀야겠다는 생각에, 그 어느 때보다 깊이 궁리했습니다. 지금껏 할머니의 지혜에 완전히 눌려 온 터라, 이번에는 저승사자인 자신만이 아는 물음을 던지기로 마음먹었지요.

"할멈, 이것이 내 마지막 문제다." 저승사자가 사뭇 심각한 낯빛을 지었습니다. "이건 정말이지 어려운 물음이야." "어려워도 좋소. 어디 말해 보시구려." 할머니는 여전히 넉넉한 웃음을 지으셨습니다. "나는 수백 년 동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봐 왔다. 헌데 할멈, 죽음을 코앞에 둔 사람들이 가장 뼈저리게 후회하는 것이 대체 무엇이겠느냐?"

이번만큼은 오직 저승사자인 자신만이 아는, 참으로 깊은 물음이었습니다. 할머니는 한참을 말없이 생각에 잠기셨지요. 저승사자는 속으로 은근한 기대를 품었습니다. '이번만큼은 내가 이길 수 있겠구나.' 허나 할머니는 여든다섯 해 삶의 무게를 실어, 천천히 입을 여셨습니다.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가장 사무치게 후회하는 것은…" 할머니가 조심스레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고맙다', '사랑한다', '미안하다'는 그 짧은 말 한마디를, 끝내 제대로 전하지 못한 것이 아니겠소?" 그 말에 저승사자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정확하다!" 저승사자가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습니다. "정말이지 그러하다. 사람들은 죽음의 문턱에서 재물이나 벼슬을 아쉬워하는 게 아니라, 마음을 제때 표현하지 못한 것을 가장 후회하지." 할머니는 그저 빙그레 웃으셨습니다.

"그럼 이제 내가 세 대 영으로 완승한 게로군요?" 할머니가 짐짓 장난스럽게 물으셨습니다. 저승사자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렇다. 할멈이 완전히 이겼다. 참으로… 참으로 놀라운 지혜다." "그럼 약속대로, 젊은 양반이 이 늙은이에게서 한 가지를 배워 가야지요." 할머니가 자애롭게 웃으셨습니다. "무엇을 배워야 하겠소?" 저승사자가 겸손하게 물었습니다. 수백 년을 살고도 이런 지혜에 이르지 못한 자신이 문득 부끄러웠던 것이지요.

"젊은 양반, 이리 가까이 앉아 보시구려." 할머니가 저승사자를 곁에 앉히셨습니다. "내가 여든다섯 해를 살며 깨우친, 가장 소중한 지혜 세 가지를 일러 주리다." 저승사자는 마른침을 삼키며, 진지하게 할머니의 말씀을 들을 채비를 했습니다.

"첫째로," 할머니가 나직이 운을 떼셨습니다. "나이란 그저 헤아리는 숫자가 아니라는 게요. 중한 것은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아니라, 그 세월 동안 얼마나 배우고 얼마나 자랐느냐지. 젊은 양반은 나보다 몇 곱절을 더 살았어도, 아직 배울 것이 이리 많잖소?" 저승사자는 그 말에 깊이 고개를 숙였습니다. 참으로 옳은 말이었지요.

"둘째로," 할머니가 말을 이으셨습니다. "참된 지혜란 많이 아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솔직히 인정하는 데 있다오. 나는 여든다섯을 살고도 여전히 모르는 것투성이라오. 허나 그것을 부끄러워 않고, 죽는 날까지 배우려는 마음을 놓지 않는 것, 그게 바로 지혜의 첫걸음이지."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마음이라…." 저승사자는 새로운 눈을 뜨는 듯했습니다. 여태 자신은 모든 것을 다 안다 여겼건만, 실은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았으니까요.

"그리고 셋째로," 할머니가 가장 힘주어 말씀하셨습니다. "죽음은 결코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는 게요. 젊은 양반이 하는 일도, 사람의 생을 끝장내는 무서운 일이 아니라, 새로운 여정으로 고이 안내하는 귀한 일이라오." 그 말에 저승사자는 온몸에 벼락을 맞은 듯했습니다. 여태껏 자신의 일을 사람의 목숨을 거두는 두렵고 서글픈 일이라 여겨 왔건만, 할머니의 말을 듣고 보니 전혀 다른 빛깔로 보이는 게 아니겠습니까. "새로운 여정으로 안내하는 일이라…."

"그렇다오. 젊은 양반의 일은 참으로 중하고 뜻깊은 일이오. 사람들을 벌벌 떨게 하는 일이 아니라, 두려움 없이 새 길로 첫발을 내딛도록 손잡아 주는 일인 게지." 할머니의 말에 저승사자는 자신의 일을 완전히 새로이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할멈… 참으로 고맙소." 저승사자가 진심을 담아 절을 올렸습니다. "나는 여태 내 일을 어리석게 오해하고 있었소이다." "젊은 양반도 본디 고운 마음을 지녔소. 그저 그 방법을 몰랐을 뿐이지."

바로 그때였습니다. 문득 하늘에서 범상치 않은 기운이 스르르 내려왔습니다. 저승사자는 흠칫 놀라 고개를 쳐들었지요. "이상하다… 이 기운은…" 할머니도 가만히 하늘을 우러르셨습니다. '뭔가 예사롭지 않은 일이 벌어지려나 보구나.' 이윽고 온 하늘을 뒤흔드는 위엄 서린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습니다. "저승사자여!" 그 목소리를 들은 저승사자는 그 자리에 넙죽 무릎을 꿇었습니다. "여, 염라대왕님!" 할머니도 그제야 누구의 음성인지 알아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큰절을 올리셨습니다.

※ 4: 할머니가 감춰 두었던 진짜 속뜻

"이 특별한 대화를,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노라." 하늘 가득 울려 퍼지는 염라대왕의 목소리에는 뜻밖에도 감탄이 짙게 배어 있었습니다. "윤씨 할멈의 지혜와, 저승사자의 뉘우침과 깨달음… 모두가 참으로 아름다웠다." 저승사자와 할머니는 서로를 마주 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염라대왕님께서 저희 이야기를 다 듣고 계셨단 말씀입니까?" 저승사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여쭈었습니다. "그러하다. 그리고 이런 일은 저승이 생긴 이래 처음이니라." 염라대왕의 목소리에는 신기해하는 기색마저 감돌았지요. "수백 년을 부려 온 저승사자가, 한낱 사람의 말에 눈물을 글썽이며 제 일을 고쳐 보는 광경이라니."

그러자 할머니가 조심스레 입을 여셨습니다. "실은… 이 늙은이가 젊은 양반과 내기를 벌인 데에는, 따로 감춰 둔 속뜻이 있었소이다." 저승사자가 의아한 얼굴로 할머니를 바라보았습니다. "감춰 둔 속뜻이라니요?" "그렇소. 그저 이기고 싶어서 벌인 일이 아니었다오."

할머니는 잠시 망설이시더니, 이윽고 진심을 담아 나직이 말씀하셨습니다. "젊은 양반을 처음 마주한 순간, 이 늙은이는 가슴이 저릿하니 아팠소. 수백 년을, 그 무거운 일을 홀로 짊어지고 걸어온 젊은 양반이 얼마나 외로웠을까 싶어서 말이오." 저승사자는 그만 숨이 턱 막혔습니다. 여태 누구도 자신에게 이런 말을 건넨 적이 없었으니까요.

"세상 사람들은 하나같이 젊은 양반을 무서워하고 피하기만 했을 테지. 아무도 그 마음속을 들여다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게고 말이오." 할머니의 나직한 말에 저승사자의 가슴이 뜨겁게 뭉클해졌습니다. 정말이지 그러했습니다. 수백 년을 살아오는 동안, 그 누구도 자신을 한 존재로서 이해해 주려 하지 않았지요. 사람들의 눈에 자신은 그저 두려움의 대상, 피하고픈 재앙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늙은이가 내기를 청한 게요." 할머니가 따뜻하게 웃으셨습니다. "젊은 양반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하나 쥐여 주고 싶었거든. 젊은 양반이 하는 일이 얼마나 귀하고 얼마나 뜻깊은 일인지, 그것을 스스로 깨닫게 해 주고 싶었을 뿐이라오."

저승사자는 그만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자신을 데리러 온 저승사자를 도리어 가엾이 여겨, 이토록 정성스레 마음을 써 준 할머니의 뜻이 사무치게 고마웠던 것이지요. "할멈… 어찌 이런…"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는 저승사자를 보며, 할머니가 부드럽게 손을 저으셨습니다. "울지 마시오, 젊은 양반. 사내대장부가 그리 눈물을 보이면 쓰나."

"허나 할멈은 어이하여…" 저승사자가 겨우 목소리를 가다듬어 여쭈었습니다. "어이하여 이 몸을 이토록 걱정해 주시는 겁니까?" "젊은 양반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존재일 게 아니오." 할머니의 눈빛이 어머니의 그것처럼 자애로웠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 치고 귀하지 않은 목숨이 어디 있겠소. 그런 젊은 양반이 수백 년을 외로이 지내는 걸 두 눈으로 보고도, 어느 늙은이가 모른 척 가만히 있을 수 있겠소이까."

그 말에 저승사자는 기어이 굵은 눈물 한 방울을 뚝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여태껏 자신을 무서워하고 밀어내기만 했던 사람들과는 달리, 이 할머니는 진심으로 자신을 아끼고 걱정해 주고 있었으니까요. "할멈… 참으로 고맙소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소." 할머니가 잔잔히 미소 지으셨습니다. "실은 이 늙은이는 죽는 게 조금도 무섭지 않다오. 여든다섯 해를, 사랑할 만큼 사랑하고 배울 만큼 배우며 넉넉히 살았거든. 아쉬울 것도, 미련도 없소. 다만 마음에 걸리는 건, 젊은 양반이 앞으로도 계속 외로이 지낼 일뿐이라오."

"할멈…" 저승사자는 할머니의 그 깊고 따뜻한 마음에 또 한 번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그래서 이 늙은이에게 마지막 소원이 하나 있소." "마지막 소원이라 하셨습니까?" "그렇소. 젊은 양반이 앞으로는 사람들을 좀 더 따뜻하게 대해 주었으면 하는 게요. 무섭게 낫을 들이대는 대신, 손을 내밀어 다정히 이끌어 주었으면 하고 말이오."

저승사자는 두 손으로 눈물을 훔치고는, 굳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예, 할멈. 반드시 그리하겠소이다." "그리고 사람들에게도 널리 일러 주시오. 죽음이란 결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여정의 시작이라는 것을 말이오." "예, 할멈의 가르침을 이 몸, 결단코 잊지 않겠소이다."

바로 그때, 하늘에서 염라대왕의 목소리가 다시 무겁게 내려왔습니다. "윤씨 할멈. 그대의 마음이 참으로 아름답구나. 그런 그대에게, 이 염라가 특별한 청을 하나 하고자 한다." "특별한 청이라 하셨습니까?" 할머니가 하늘을 우러러 여쭈었습니다.

"그러하다. 할멈의 그 지혜가, 저승의 다른 사자들에게도 절실히 필요하다." 염라대왕의 목소리는 진지했습니다. "잠시 저승에 머물며, 그 어리고 외로운 사자들을 가르쳐 주지 않겠느냐? 할멈 같은 이가 곁에 있어 준다면, 저승의 사자들도 한결 지혜롭고 따뜻하게 제 일을 해낼 수 있을 게다."

할머니는 그 뜻밖의 청에 잠시 눈을 크게 뜨셨습니다. "이 늙은이가… 저승사자들을 가르친다고요?" 곁에 있던 저승사자도 기대에 찬 얼굴로 할머니를 바라보았습니다. "할멈, 이건 참으로 좋은 기회인 듯하오!" 할머니는 잠시 생각에 잠기시더니, 이윽고 잔잔히 웃으며 대답하셨습니다. "영광이지요. 허나 한 가지 조건이 있소이다." "무엇이든 말해 보아라." "떠나기 전에, 우리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가고 싶소. 그리고 정든 마을 사람들에게도 마지막으로 당부 한마디를 남기고 싶고 말이오." "물론이다. 넉넉히 시간을 주겠노라. 할멈 같은 이에게라면, 그만한 은혜쯤은 마땅히 베풀어야지."

※ 5: 가족과의 작별, 꽃다발을 든 저승사자

이튿날 아침, 할머니는 흩어져 살던 가족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으셨습니다. "다들 모여 보아라. 이 할미가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단다." 손자 봉이도, 며느리도, 소식을 듣고 달려온 마을 사람들까지, 모두가 할머니 댁 마당에 옹기종기 둘러앉았지요. "할머니, 대체 무슨 일이신데요?" 봉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여쭈었습니다.

"실은 말이다…" 할머니가 조심스레 말문을 여셨습니다. "이 할미가 이제 저승으로 떠날 때가 되었단다." "예?" "할머니!" 가족들이 하나같이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쳤습니다. 며느리는 벌써 눈가가 붉어졌고, 봉이는 할머니의 소매를 붙들었지요.

"허나 슬퍼하지들 마라." 할머니가 오히려 환하게 웃으셨습니다. "이 할미는 저승에서 참으로 특별한 일을 맡게 되었거든. 저승사자들을 가르치는 스승이 될 것이란다." 가족들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할머니께서… 저승사자들을 가르치신다고요?" 며느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습니다.

"그래. 저승사자들도 우리와 다를 바 없이 마음을 지닌 존재들이더구나." 할머니가 자상하게 설명하셨습니다. "다만 아무도 그들의 외로운 속을 헤아려 주지 않았을 뿐이지. 그래서 이 할미가 가서, 따뜻한 마음이란 어떤 것인지 하나하나 일러 줄 참이란다." 그 말에 가족들은 놀라면서도, 어느새 눈빛에 자랑스러움이 서리기 시작했지요.

"우리 할머니는 참말로 대단하셔!" 봉이가 눈물 그렁그렁한 얼굴로 감탄했습니다. "저승에 가셔서도 스승이 되시다니요!" "그러게 말이다. 이 할미는 어디를 가든 누군가를 가르치고 돕는 일을 하게 되나 보구나." 할머니가 흐뭇하게 웃으셨습니다.

그러고는 할머니가 가족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손을 잡으며 마지막 당부를 남기셨습니다. "며늘아기야, 너는 참으로 착하고 속 깊은 아이다." 할머니가 며느리의 손을 꼬옥 쥐셨습니다. "이 할미가 없더라도, 앞으로도 이 집안을 따뜻이 보듬어 다오." "예, 어머님. 어머님께서 가르쳐 주신 그대로, 꼭 그리 살겠습니다." 며느리가 끝내 눈물을 쏟으며 대답했습니다.

"봉이야." 할머니가 이번에는 손자를 바라보셨습니다. "너는 글공부를 게을리 말고, 무엇보다 마음이 넉넉한 사람이 되거라. 세상에서 제일가는 벼슬이 남을 돕는 마음이라는 걸, 부디 잊지 말고 살아 다오." "예, 할머니! 할머니 가르침을 이 봉이, 평생 가슴에 새기고 살겠습니다!" 봉이도 울먹이며 굳게 약속했습니다. "그래, 우리 봉이가 그리 말해 주니 이 할미는 이제 아무 걱정이 없구나." 할머니가 봉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인자하게 웃으셨습니다.

둘러선 마을 사람들에게도 할머니는 정겨운 당부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다들 서로 아끼고 도우며 살아가시오. 혼자서는 도무지 못 할 일도, 여럿이 손을 맞잡으면 거뜬히 해낼 수 있는 법이라오. 그리고 살면서 고맙거든 고맙다, 미안하거든 미안하다, 그 말을 아끼지들 마시오. 마음은 때를 놓치면 영영 전할 길이 없는 것이니." "예, 할머니! 할머니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대답하며 눈물을 훔쳤습니다. 여든다섯 해를 한마을에서 부대끼며 살아온 정이 새삼 사무쳐, 마당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지요.

그날 저녁 무렵, 마당에 다시 서늘한 기운이 감돌더니 저승사자가 찾아왔습니다. 헌데 이번에는 그 모습이 지난밤과는 사뭇 달랐지요. 등골 서늘하던 그 무서운 기운은 온데간데없고, 얼굴에는 따스한 미소가 어려 있었습니다. 게다가 손에 들린 것은 서슬 퍼런 낫이 아니라, 곱게 묶은 들꽃 한 다발이었지요. "할멈, 이제 떠날 채비가 되셨는지요?"

"어머나, 젊은 양반이 아주 딴사람이 되었네그려!" 할머니가 손뼉을 치며 반가워하셨습니다. "꽃다발까지 다 준비해 오시고!" "할멈께서 일러 주신 대로 해 보았소이다." 저승사자가 수줍게 웃었습니다. "사람들을 무섭게 하는 것보다, 따뜻하게 안내하는 편이 훨씬 낫겠다 싶어서 말이오. 낫을 든 손보다, 꽃을 든 손이 어울리는 일이 아니겠소."

가족들도 저승사자의 달라진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저승사자가 저리 다정할 수도 있구나!" "우리 할머니 덕분에 저승사자까지 바뀌셨네요!" 저승사자는 둘러선 가족들에게도 하나하나 정중히 고개 숙여 인사했습니다. "너무 염려들 마시오. 할멈께서는 저승에서도 참으로 귀한 일을 하시게 될 게요. 그리고 할멈께서 원하시기만 하면, 여러분을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도록 하겠소이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소. 염라대왕님께서 특별히 허락해 주셨소."

떠나기에 앞서 할머니는 마지막으로 정든 집을 천천히 둘러보셨습니다. "여든다섯 해를 살아온 이 집… 참으로 많은 추억이 서려 있구나." 그러고는 가족들을 한 사람씩 꼬옥 품에 안아 주셨지요. "슬퍼들 말거라. 이 할미는 이제 새로운 여정을 떠나는 것뿐이란다.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인 게야."

마침내 떠날 시각이 되었습니다. 저승사자와 나란히 걸어가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가족들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지만, 그 눈물 속에는 자랑스러움이 함께 어려 있었습니다. "우리 할머니는 참말로 대단한 분이셔." "어딜 가든 누군가를 도우시는구나." 저승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저승사자가 나직이 입을 열었습니다. "할멈, 참으로 고맙소이다. 할멈 덕분에 이 몸이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난 듯하오." "젊은 양반도 본디 고운 마음을 지녔던 게요. 이 늙은이는 그저 그 마음이 나아갈 길을 살짝 일러 주었을 뿐이라오."

※ 6: 저승까지 바꾸어 놓은 할머니의 지혜

저승에 다다르자, 염라대왕이 몸소 나와 할머니를 맞아 주었습니다. "윤씨 할멈, 잘 왔노라. 그대 같은 이가 이곳에 와 주니, 어둡던 저승이 한결 밝아지는 듯하구나." "과찬이십니다, 대왕님." 할머니가 공손히 고개를 숙이셨습니다. "이 늙은이야말로 이런 귀한 자리를 주시니 그저 황송할 따름이지요."

"할멈이 앞으로 저승사자들의 스승이 되어 줄 터인데, 무엇부터 가르칠 생각인가?" 염라대왕이 넌지시 물었습니다. 할머니는 잠시 생각하시더니 잔잔히 대답하셨지요. "먼저 그 아이들의 얼어붙은 마음부터 따뜻이 녹여 주고 싶습니다. 아무리 일이 고되고 힘겨워도, 그 안에서 보람이란 것을 느낄 수 있도록 말이지요."

할머니가 저승에 발을 들인 바로 그날부터, 저승에는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를 모셔 온 저승사자가 먼저 나서서, 다른 사자들에게 할머니의 지혜를 신이 나서 전했지요. "여보게들, 내가 참으로 놀라운 할멈을 만났다네!" "정말인가? 대체 어떤 분이시길래?" "글쎄, 우리가 하는 일이 사람을 무섭게 하는 일이 아니라, 새로운 여정으로 고이 안내하는 귀한 일이라 하시지 뭔가!" 그 말에 저승사자들은 저마다 눈을 크게 떴습니다.

이튿날부터 할머니는 본격적으로 저승사자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얘들아, 너희가 하는 일이 얼마나 귀하고 중한 일인지, 너희 스스로는 알고 있느냐?" "잘 모르겠습니다, 할머니." 젊은 저승사자 하나가 머뭇거리며 대답했습니다. "그럼 이 할미가 하나하나 일러 주마."

"너희는 사람의 한평생에서 가장 중한 순간, 그 마지막 길목에 함께해 주는 존재들이란다." 할머니의 목소리가 다정했습니다. "그들이 낯선 세상으로 첫발을 내디딜 때, 두려움에 떨지 않도록 곁을 지켜 주는 것이지. 그보다 더 귀한 일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느냐." 할머니의 말에 저승사자들은 제 일을 향한 새로운 자부심으로 가슴이 뻐근해졌습니다.

"허나 할머니," 한 저승사자가 근심스레 속내를 털어놓았습니다. "사람들은 저희를 너무나 무서워합니다. 저희가 나타나기만 하면 벌벌 떨며 달아나기 바쁩니다." "그건 너희가 다가가는 방식 탓이란다." 할머니가 자상하게 일러 주셨습니다. "무섭게 낫을 치켜들고 나타나지 말고, 따뜻이 손을 내밀며 다가가 보렴." "어, 어떻게 말입니까?"

"우선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아라. 그리고 나직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이리 말해 보렴. '두려워 마세요. 이제 새로운 여정을 떠날 시간이랍니다.' 하고 말이다." 할머니의 조언에 저승사자들은 번쩍 눈을 떴습니다. "저희가 정말 그리해도 되는 것입니까?" "되고말고. 무섭게 군다고 사람이 순순히 따라오는 게 아니란다. 마음을 열어 주어야 발걸음도 가벼워지는 법이지."

며칠 뒤, 저승사자들은 할머니의 가르침대로 조심스레 일을 해 보았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사람들의 반응이 완전히 달라졌지요. "어라? 저승사자가 이리도 다정할 수가 있구나!" "어쩐지 하나도 무섭지가 않네요!" 두려움에 떨던 이들이 도리어 저승사자의 손을 마주 잡고, 편안한 얼굴로 새 길을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한 달이 흐르자 저승 전체의 공기가 온통 뒤바뀌었습니다. 저승사자들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정겹고 미더운 안내자가 되었지요. 저승에 갓 도착한 이들도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새 삶에 적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염라대왕도 이 놀라운 변화에 깊이 감동했습니다. "할멈 덕분에 저승이 아주 딴 세상이 되었구나. 이제 이곳이 비로소 참된 안식처가 된 듯하다." "다행입니다, 대왕님. 그 아이들이 워낙 본바탕이 착해서, 금세들 달라지더군요." 할머니가 흐뭇하게 웃으셨습니다.

할머니는 약속대로 이따금 이승의 가족들을 만나러 다녀오셨습니다. 가족들은 할머니가 저승에서 하시는 일을 전해 듣고, 더욱더 자랑스러워했지요. "우리 할머니가 저승까지 바꾸어 놓으셨다니!" "그러게 말이에요. 요즘 마을에서 돌아가신 분들이 하나같이 편안하게 눈을 감으셨대요." 봉이가 신이 나서 말했습니다. "다들 꿈결에 다정한 안내자를 만났다며 고마워한다지 뭐예요." "다행이구나. 그 아이들이 이 할미 말을 참으로 잘 새겨들었나 보다."

세월이 흐르며 할머니의 이름은 저승 곳곳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멀리 다른 고을을 맡은 저승사자들까지 할머니께 배우러 찾아왔고, 할머니는 오는 이마다 마다 않고 따뜻이 가르쳐 주셨지요. "지혜란 나누면 나눌수록 도리어 커지는 법이란다." 그 말씀 그대로, 할머니의 지혜는 저승 구석구석까지 훈훈하게 번져 나갔습니다.

어느 날, 맨 처음 할머니를 만났던 그 저승사자가 다시 할머니를 찾아왔습니다. "할멈, 참으로 고맙소이다. 할멈 덕분에 이 몸의 삶이 송두리째 달라졌소." "젊은 양반도 본디 고운 마음을 지녔던 게요. 이 늙은이는 그저 그 마음이 피어날 자리를 마련해 주었을 뿐이지." "허나 할멈의 지혜가 아니었다면, 이 몸은 여태 외롭고 무서운 존재로 남아 있었을 게요." "이제는 곁에 벗이 이리 많잖소. 더는 혼자가 아니라오." 정말이지 저승사자들은 어느새 서로 돕고 의지하며 정답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할머니는 평생 꿈꿔 온 일을 이루셨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새로운 것을 배우고, 또 다른 이들을 가르치며,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한 곳으로 만드는 일을 말이지요. "여든다섯 해를 살아온 보람이 이제야 넘치는구나." 염라대왕이 그런 할머니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윤씨 할멈, 그대는 저승이 생긴 이래 가장 위대한 스승이 되었노라." "위대하다니요, 당치 않으십니다. 이 늙은이는 그저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지요." "그 겸손함이야말로 그대를 더욱 위대하게 하는 것이니라."

이리하여 여든다섯 살 담양 할머니의 지혜는, 마침내 저승까지도 환하게 바꾸어 놓았더랍니다. 나이란 그저 헤아리는 숫자일 뿐이요, 참된 지혜는 언제 어디서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이 세상 모든 이에게 조용히 일깨워 준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였습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239자)

여러분, 담양 고을 윤씨 할머니와 저승사자의 특별한 내기 이야기는 어떠셨나요? 죽음 앞에서도 당당했던 할머니의 지혜, 그리고 외로운 저승사자를 도리어 품어 준 그 따뜻한 마음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습니다. 나이는 그저 숫자일 뿐, 참된 지혜는 언제든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되네요. 오늘 이야기가 마음에 드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그리고 댓글로 여러분의 생각을 나눠 주세요. 다음 이야기로 또 정겹게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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