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서 저승사자에게 한 아내의 마지막 부탁이 기적을 만들었다
죽음 앞에서 저승사자에게 한 아내의 마지막 부탁이 기적을 만들었다
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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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명이 다해 찾아온 저승사자 앞, 아내는 자신의 목숨 대신 상상도 못 할 마지막 부탁을 건넵니다. 차갑기만 하던 저승사자의 마음을 움직이고 끝내 기적을 만들어낸 한 아내의 위대한 사랑 이야기, 지금 시작됩니다.
디스크립션:
평생을 자신보다 남편을 위해 살아온 아내 ‘옥분’. 어느 날, 그의 앞에 저승사자가 나타나 목숨을 거두러 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옥분은 눈앞의 죽음보다 홀로 남을 바보 온달 같은 남편 ‘영달’이 더 걱정입니다. 그녀는 눈물로 저승사자에게 매달려, 남편이 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아주 잠시만 시간을 달라고 애원하는데… 과연 그녀의 마지막 부탁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 단양의 작은 마을,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노부부 옥분과 영달. 하지만 아내 옥분의 병세는 깊어지고, 마침내 저승사자가 찾아온다.
소백산 자락이 병풍처럼 둘러싼 충청북도 단양의 작은 마을, 이곳에 금실 좋기로 소문난 노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아내의 이름은 옥분이요, 남편의 이름은 영달이었지요. 마당가 감나무에 마지막 잎새가 위태롭게 매달려 있던 늦가을의 어느 오후, 옥분은 툇마루에 앉아 기침을 콜록거리면서도 헛간에서 끙끙거리고 있는 남편 영달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영달은 지금 낡은 쟁기 날을 고쳐보겠다며 한 시간째 낑낑대고 있었지만, 일은 좀처럼 진척이 없어 보였습니다. “아이고, 영감. 그러다 다친다니까 그러네. 그냥 이리 주시오. 내가 동네 김 서방한테 부탁하면 금방일 것을.” 옥분의 잔소리에 영달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대꾸했습니다. “허허, 뭘 그런 것 가지고 사람을 부르나. 내 손으로 해야 직성이 풀리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는 이내 쟁기를 내려놓고 옥분의 곁으로 와 앉았습니다. 옥분은 그런 남편의 뭉툭한 손을 가만히 잡았습니다. 평생 흙만 만져온 사람의 손이라 거칠고 투박했지만, 옥분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믿음직한 손이었습니다. 반대로 영달에게 옥분은 세상의 전부였습니다. 바보 온달이 평강공주를 만나 장군이 되었듯, 아무것도 모르던 총각 영달이 옥분을 만나 비로소 한 사람의 어엿한 가장이 될 수 있었지요. 밥 짓는 법부터 밭일하는 요령까지, 옥분이 하나하나 가르쳐주지 않았다면 영달은 아마 평생을 철부지로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여보, 날이 점점 차가워지는데, 기침이 더 심해지는 것 같구려. 내일은 내가 읍내에 나가 용한 의원이라도…” 영달의 걱정스러운 말에 옥분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됐수다. 내 병은 의원이 고칠 병이 아니오. 다 늙어서 그런 것을… 그냥 영감이나 내 곁에 있어주면 그게 약이지.” 옥분은 자신의 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감하고 있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숨이 가빠오고, 밤에는 잠 못 이루는 날이 허다했지요. 하지만 그녀는 죽음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다만, 자신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할 어린아이 같은 남편을 두고 가야 한다는 사실이 못내 가슴 아팠습니다. 옥분이 애써 미소를 지으며 남편의 어깨에 기댄 채 스르르 눈을 감았을 때였습니다. 화창하던 하늘이 갑자기 흐려지고, 마당으로 싸늘한 바람 한 줄기가 휑하니 불어왔습니다. 그 바람과 함께, 두 사람의 그림자 옆으로 검고 긴 그림자 하나가 소리 없이 내려앉았습니다. 옥분과 영달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습니다. 마당 한가운데, 언제부터 서 있었는지 모를 한 사내가 그들을 무표정하게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검은 도포에 검은 갓을 쓴 창백한 얼굴, 인간의 것이라곤 할 수 없는 차가운 눈빛. 저승사자였습니다. 저승사자는 그 어떤 말도 없이, 오직 옥분만을 뚫어지게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입이 천천히 열렸습니다. “이옥분. 때가 되었다. 가자.”
※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옥분. 하지만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남편이 걱정돼 차마 눈을 감지 못하고, 저승사자에게 마지막 부탁을 올린다.
저승사자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그 한마디에 주변의 공기마저 꽁꽁 얼어붙는 듯했습니다. 남편 영달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옥분과 저승사자를 번갈아 쳐다볼 뿐이었습니다. “대체 누구요, 당신? 우리 집사람 이름은 어찌 아는 거요?” 영달의 물음에 저승사자는 대꾸할 가치조차 없다는 듯, 여전히 옥분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옥분은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올 것이 왔구나, 생각했지요. 그녀는 남편의 손을 꼭 잡으며 마지막 인사를 건네려는 듯 입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영달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옥분의 앞을 막아섰습니다. “아니오! 절대 안 되오! 우리 집사람은 절대 못 데려가!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을 어딜 데려가려고 해!” 그는 겁에 질려 온몸을 벌벌 떨면서도, 아내를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거대한 저승사자의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저승사자는 그런 영달을 귀찮다는 듯이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비켜라, 어리석은 인간아. 너의 아내 이옥분은 이미 명이 다하였다. 이는 하늘의 뜻이니, 네가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저승사자가 손을 들어 영달을 밀치려 하자, 옥분이 다급하게 그의 앞을 막아섰습니다. 그리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행동을 했습니다. 그녀는 차가운 마당 바닥에 무릎을 꿇고 저승사자를 향해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저승사자님, 저승사자님. 제 명이 다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늘의 뜻을 거역할 생각 또한 추호도 없습니다. 다만… 다만 제가 마지막으로 드릴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옥분의 절절한 모습에 저승사자의 차가운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습니다. 영달은 아내가 죽는다는 말에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그저 “안 돼, 안 돼…” 하는 말만 중얼거리며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지요. 옥분은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들어 저승사자를 바라보며 애원했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저는 평생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았으니, 지금 당장 떠나도 여한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기 저 바보 같은 우리 영감은 어떡합니까.” 그녀의 손가락이 영달을 향했습니다. “제가 없으면 저 양반은 당장 내일 아침밥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합니다. 밥솥에 물 하나 맞출 줄을 모르고, 아궁이에 불 하나 지필 줄을 모릅니다. 옷이 해져도 기워 입을 줄을 모르고, 방이 추워도 군불 땔 줄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제가 저이에게 사람답게 사는 법이라도 제대로 가르쳐주고 갈 수 있도록, 아주 조금만… 아주 잠시만 시간을 주십시오. 제발 부탁입니다.” 옥분은 이마가 깨어지도록 머리를 찧으며 통곡했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홀로 남겨질 남편을 위해, 죽음을 앞둔 아내가 저승사자에게 시간을 빌려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던 겁니다. 저승사자는 아무 말 없이 그 모습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수천 년간 수많은 인간의 죽음을 봐왔지만, 죽음의 문턱에서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남겨질 이를 위해 이토록 처절하게 애원하는 모습은 처음이었습니다. 그의 얼음장 같던 얼굴에 아주 희미한 균열이 이는 듯했습니다.
※ 옥분의 절절한 진심에 마음이 움직인 저승사자, “마당가 감나무의 마지막 잎이 떨어지기 전까지”라는 기한을 주고 사라진다.
시간이 멈춘 듯한 정적 속에서 저승사자는 무릎 꿇고 애원하는 옥분을 그저 말없이 내려다볼 뿐이었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어떤 감정도 떠오르지 않아, 그가 옥분의 청을 들어줄 것인지 아닌지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었지요.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영혼을 거두어 오면서, 그는 늘 한결같았습니다. 천상의 법도는 냉엄하여 사사로운 정에 얽매이지 않으며, 정해진 명을 거두는 것이 그의 소임이자 존재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눈앞의 이 늙은 아내는 조금 달랐습니다. 죽음의 공포에 질려 발버둥 치는 것도 아니요, 더 살아보겠다고 부질없는 욕심을 부리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남겨질 짝꿍의 안위를 걱정하며, 제 목숨을 담보로 잠시의 유예를 구하고 있었습니다. 그 순수하고도 깊은 진심이, 오랜 세월 잊고 있던 무언가를 저승사자의 마음속에서 건드린 것일까요. 한참의 침묵 끝에, 마침내 저승사자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지만, 처음과는 달리 아주 희미한 기운의 변화가 느껴졌습니다. "일어나라. 천상의 법도는 사사로운 정으로 어길 수 없는 법. 정해진 명을 거두는 것이 나의 소임이다." 그 말에 옥분의 얼굴에 떠올랐던 실낱같은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듯했습니다. 남편 영달은 “아이고, 여보! 아이고!”하며 땅을 치며 통곡하기 시작했지요. 하지만 저승사자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허나, 죽음을 앞두고 제 한 몸이 아니라 남겨질 이를 위해 이토록 애원하는 영혼은 실로 오랜만이로구나. 네 그 절절한 진심이 하늘에 닿았는지, 내 눈을 가리는지 알 수 없으나, 마지막 기회를 한 번 주겠다." '기회'라는 말에 옥분은 번쩍 고개를 들었습니다. 저승사자는 길고 창백한 손가락으로 마당가의 감나무를 가리켰습니다. 그곳에는 이제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한 붉은 감잎 하나가 위태롭게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보아라. 저기 마당가 감나무에 매달린 마지막 잎새가 보일 것이다. 저 잎이 제 생명을 다하여 차가운 땅에 떨어지는 날, 나는 다시 너를 찾아올 것이다. 그전까지, 네가 남편에게 알려주고자 하는 것들을 모두 마치도록 해라. 이는 내가 너에게 베푸는 마지막 자비이자, 하늘이 네 진심에 답하는 마지막 기회이니라." 그 말을 마친 저승사자는 홀연히 연기처럼 사라졌습니다. 그가 사라지자, 마당을 가득 채웠던 살을 에는 듯한 냉기도 함께 걷히고, 언제 그랬냐는 듯 따스한 늦가을의 햇살이 다시 마당을 비추었습니다. 옥분은 한동안 멍하니 감나무 잎만 바라보았습니다. 남편 영달은 여전히 훌쩍이며 옥분의 곁으로 와 그녀를 부축했습니다. "여보, 괜찮소? 대체 이게 무슨 일이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옥분의 눈에는 눈물 대신 단호한 의지가 불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눈물을 닦아주며 몸을 일으켰습니다. "영감, 울고 있을 시간이 없소. 어서 정신 차리시오. 저승사자님이 우리에게 시간을 주셨소. 아주 귀한 시간을 말이오. 이제부터 제가 하는 것을 똑똑히 보고 배우셔야 합니다. 제가 없어도 밥 굶지 않고, 추위에 떨지 않고, 사람 구실 제대로 하고 살아가시려면 말입니다." 옥분의 목소리에는 슬픔 대신 비장함이 가득했습니다. 그녀에게는 이제 한순간도 허투루 보낼 시간이 없었습니다. 위태롭게 매달린 저 마지막 잎새는 그녀에게 남은 생의 시간이자, 남편을 위한 마지막 사랑의 시간이었습니다.
※ 옥분은 남은 시간 동안 남편 영달에게 밥 짓는 법, 옷 기워 입는 법 등 홀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씩 가르치기 시작한다.
다음 날 새벽, 동이 트기도 전부터 옥분은 남편 영달을 깨워 부엌 아궁이 앞에 앉혔습니다. 이렇게 옥분의 마지막 속성 과외가 시작되었습니다. 첫 번째 과목은 바로 밥 짓기였습니다. "영감, 잘 보시오. 쌀은 이렇게 손등으로 수평을 맞춰야 물이 딱 맞는 거요. 너무 많아도 안 되고, 너무 적어도 안 됩니다." 옥분은 차근차근 설명하며 시범을 보였지만, 평생 밥솥 근처에도 가본 적 없는 영달에게는 모든 것이 외계의 언어처럼 들렸습니다. 그는 옥분이 시키는 대로 해보았지만, 쌀을 씻다 반을 쏟아버리는가 하면, 물을 너무 많이 부어 멀건 죽을 만들어 놓기 일쑤였습니다. 또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때에는 연기만 자욱하게 피워 온 가족의 눈물 콧물을 쏙 빼놓았지요. "아이고, 이 양반아! 불쏘시개부터 넣고 마른 장작을 넣어야지, 젖은 장작부터 넣으면 어떡하시오!" 옥분은 속이 터져 잔소리를 하면서도, 영달의 얼굴에 묻은 검댕을 손수 닦아주었습니다. 밥 짓기 다음은 반찬 만들기였습니다. 옥분은 영달이 가장 좋아하는 된장찌개 끓이는 법부터 가르쳤습니다. "멸치 육수를 먼저 진하게 내고, 된장은 너무 오래 끓이면 쓴맛이 나니 마지막에 살살 풀어야 하오. 두부랑 호박은 이만하게 썰고…" 영달은 옥분의 설명에 따라 서툰 솜씨로 칼질을 하다가 손을 베일 뻔하기를 수차례. 찌개 맛을 본다면서 소금을 너무 많이 넣어 바닷물처럼 짜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옥분은 짠 찌개를 묵묵히 다 비우며, "그래도 처음 한 것치고는 제법이오. 내일은 더 잘할 수 있을 게요."라며 남편의 기를 살려주었습니다. 하루 이틀,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습니다. 옥분은 자신의 쇠약해진 몸을 이끌고 영달에게 옷 기워 입는 법, 장작 패는 법, 밭에 씨앗 심는 법, 심지어는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법까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지혜를 남김없이 전수했습니다. 가을비가 세차게 내리는 날이면, 부부는 행여나 감나무 잎이 떨어질까 뜬눈으로 밤을 새우기도 했습니다. 바람이 몹시 부는 날이면, 영달은 온몸으로 감나무를 감싸 안고 바람을 막아보려 애쓰기도 했지요. 그 모습에 옥분은 눈시울이 붉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 한구석이 든든해졌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서럽고 막막하기만 하던 영달도, 아내가 자신을 위해 마지막 남은 생명의 불꽃을 태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밤이 되면 옥분이 가르쳐 준 것들을 잊지 않으려 종이에 더듬더듬 적어가며 복습했고, 낮에는 서툴지만 최선을 다해 아내의 가르침을 따랐습니다. 그러는 동안 영달의 거칠기만 하던 손은 점점 섬세해졌고, 어리숙하던 눈빛은 차츰 책임감으로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옥분의 기침 소리는 날이 갈수록 깊어졌지만, 남편의 서툰 밥상 앞에서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처럼 웃어 보였습니다. 그들의 하루하루는 이별을 향해 달려가는 슬픈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완성해가는 가장 애틋하고 소중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 마침내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던 밤, 저승사자가 다시 찾아온다. 옥분은 담담히 죽음을 받아들이지만, 그사이 훌륭하게 성장한 영달이 옥분의 앞을 막아선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어느덧 앙상한 가지만 남은 감나무에는 약속의 잎사귀 하나만이 외롭게 달려 있었습니다. 그 잎새는 마치 부부의 애틋한 마음을 아는 듯, 몇 번의 된서리와 차가운 가을비를 꿋꿋이 견뎌내 주었지요.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는 법. 삭풍이 몰아치던 어느 겨울밤, 마침내 마지막 잎새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팔랑거리며 가지를 떠나,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마당 위로 소리 없이 내려앉았습니다.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마당을 가득 채웠던 싸늘한 바람이 거짓말처럼 멎고, 그 자리에 약속대로 검은 도포의 저승사자가 홀연히 나타났습니다. 그의 등장은 여전히 비현실적이었지만, 옥분과 영달은 더 이상 놀라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며칠 전부터 마지막 날이 가까워졌음을 예감하고, 조용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약속한 날이 되었다, 이옥분.” 저승사자의 나직한 목소리에, 옥분은 방 안에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녀는 지난 몇 주간의 시간 덕분에, 이제는 아무런 미련도 여한도 없었습니다. 남편 영달은 이제 그녀 없이도 밥을 지을 줄 알았고, 땔감을 구해 불을 피울 줄도 알았습니다. 서툴지만 제법 맵시 있게 옷을 기워 입을 줄도 알았지요. 옥분은 남편을 향해 세상에서 가장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영감, 이제 저는 괜찮소. 우리 영감, 이제는 혼자서도 씩씩하게 잘 살아갈 수 있을 게요. 그러니 부디, 슬퍼하지 마시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저승사자를 따라나서려 할 때였습니다. 남편 영달이 조용히 그녀의 앞을 막아섰습니다. 예전처럼 울부짖거나 절망에 빠진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차분하지만 단호한 눈빛으로 저승사자를 정중하게 마주 보았습니다. “저승사자님,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저승사자는 의외라는 듯 영달을 바라보았습니다. 영달은 아내의 손을 꼭 잡고 부엌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리고는 잠시 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작은 밥상 하나를 들고 나왔습니다. 밥상 위에는 갓 지은 쌀밥 한 그릇과, 영달이 아내에게 배운 대로 끓인 구수한 된장찌개가 전부였습니다. 영달은 그 밥상을 저승사자와 아내 앞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습니다. “제 아내가 평생을 저를 위해 따뜻한 밥상을 차려주었습니다. 이제는 제가 제 아내를 위해, 그리고 먼 길 오신 귀한 손님을 위해 처음으로 밥상을 차렸습니다. 비록 변변찮은 밥상이오나, 부디 이것을 받으시고 제 아내의 마지막 길을 편안하게 인도해주십시오. 따뜻한 밥 한 끼라도 대접하여 보내드리는 것이, 남편으로서 제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도리라 생각합니다.” 영달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그 속에는 깊은 사랑과 존중,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자의 숭고한 위엄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아내의 뒤에 숨는 어린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아내의 마지막 가르침 속에서, 그는 비로소 아내를 지키고 보내줄 줄 아는 진짜 어른이, 진짜 남편이 되어 있었던 겁니다. 저승사자는 아무 말 없이 김이 피어오르는 밥상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수천 년간 영혼을 거두러 다니면서, 이런 대접은, 아니 이런 광경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 아내를 지키려는 영달의 진심과 그를 위하는 옥분의 희생에 감동한 저승사자. 부부의 이름이 적힌 명부를 고쳐주고, 그들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선물한다.
저승사자는 밥상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두 노부부를 오랫동안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무표정한 얼굴 위로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습니다. 그는 본디 인간의 음식을 먹지 않으며, 인간의 정에 얽매이지도 않습니다. 그저 명부에 적힌 대로, 정해진 시간에 영혼을 거두어 가는 것이 그의 소임의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오늘, 그는 생전 처음으로 자신의 소임 앞에서 깊은 고뇌에 빠졌습니다. 눈앞의 이 밥상은 그저 쌀밥과 찌개가 아니었습니다. 한 아내의 마지막 생명이 담긴 희생이었고, 한 남편의 서툰 인생이 담긴 진심이었습니다.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도 뜨겁고, 그 어떤 법도보다도 무거운 의미가 담겨 있는 밥상이었습니다. 한참의 침묵 끝에, 저승사자가 마침내 입을 열었습니다. 그의 목소리에서는 더 이상 이전의 냉기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나는 밥을 먹지 않는다. 나는 정을 먹지 않는다. 나는 그저 명을 거둘 뿐이다.” 그 말에 부부의 얼굴에 실망감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저승사자의 말은 이어졌습니다. “허나, 나는 오늘 너희 부부에게서 밥보다 뜨거운 정을 보았고, 명부의 글자보다 무거운 사랑을 보았다. 죽음으로도 갈라놓지 못할 너희의 그 지극한 마음을 보았다.” 저승사자는 품에서 붉은 글씨가 빼곡히 적힌 두루마리, 즉 명부를 꺼내 들었습니다. 그는 명부를 펼쳐 옥분의 이름을 찾아냈습니다. “이옥분. 너의 명은 오늘 밤까지였다. 허나, 너의 희생은 새로운 명을 만들었고, 너의 남편의 진심은 그 명을 이어가게 할 것이니… 하늘의 법도 또한 너희의 사랑 앞에 잠시 길을 비켜줄 것이다.” 그 말을 마친 저승사자는 자신의 긴 손가락으로 옥분의 이름이 적힌 부분을 가만히 쓸어내렸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죽음을 의미하던 붉은 이름 위로 따스한 빛이 피어오르더니, 이내 삶을 의미하는 검은 먹색으로 스르르 변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저승사자는 명부를 조용히 말아 품에 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서로를 위하며 주어진 시간을 아껴 살도록 해라. 나는 아주 먼 훗날, 너희 두 사람 모두가 웃으며 함께 떠날 준비가 되었을 때, 다시 찾아오겠다.” 마지막 말을 남기고, 저승사자는 처음 왔을 때처럼 소리 없이 사라졌습니다. 마당에는 다시 평화로운 정적만이 남았고, 두 노부부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것은 슬픔의 눈물이 아닌, 기쁨과 감사와 사랑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옥분은 신기하게도 기력을 되찾았고, 영달은 아내를 살뜰히 보살피는 든든한 남편이 되었습니다. 부부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으며, 마침내 아주 먼 훗날, 두 사람이 나란히 툇마루에 앉아 편안한 미소를 짓고 있던 어느 날, 저승사자가 약속대로 다시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부는 그토록 사랑했던 집을 뒤로하고, 두 손을 꼭 잡은 채 함께 저승사자의 뒤를 따라 행복한 마지막 길을 떠났다고 전해집니다.
유튜브 엔딩 멘트
죽음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운명 앞에서도, 서로를 위하는 진정한 사랑은 결국 기적을 만들어냈습니다. 아내 옥분과 남편 영달의 이야기는, 사랑이란 무엇인지, 부부란 무엇인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것 같습니다.
오늘 저희 이야기가 여러분의 가슴에 오랫동안 기억되는 따뜻한 감동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주에는 저승사자마저 깜짝 놀라게 한 조선 시대 최고의 커플이 온다고 합니다! 애절함을 넘어선 유쾌하고도 기상천외한 사랑 이야기, '저승사자도 놀란 조선시대 최고의 러브스토리, 이런 사랑은 처음' 편, 절대 놓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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