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사자 절하며 데려간 스님
저승사자 절하며 데려간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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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깊은 산사, 한평생 맑은 물처럼 수행에만 정진하시던 노스님이 조용히 눈을 감으셨습니다. 스님의 마지막을 모시기 위해 찾아온 저승사자마저 옷깃을 여미며 예의를 갖추었죠. 그런데 입적하신 지 사흘째 되는 날, 굳게 닫힌 방 안에서 스님의 시신이 감쪽같이 증발해 버렸습니다. 문도, 창문도 모두 안에서 잠겨있던 밀실. 과연 깨달음을 얻은 고승의 마지막 순간에는 어떤 기묘한 비밀이 숨겨져 있던 걸까요?
※ 1: 산사의 가을, 다가온 이별의 시간과 검은 도포의 손님
해발 천 미터가 넘는 깊고 깊은 산속, 세상의 온갖 시끄러운 소음이 닿지 않는 고요한 암자에는 어느덧 스산한 늦가을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습니다. 마당 한구석에 우뚝 서 있는 오래된 은행나무는 자신의 생명을 다 태워버리려는 듯, 눈이 시리도록 샛노란 잎사귀들을 허공으로 흩뿌리고 있었죠. 바람이 불 때마다 처마 끝에 매달린 청동 풍경이 맑고 청아한 소리를 내며 암자의 적막을 깨웠습니다. 댕그랑, 댕그랑. 그 소리는 마치 속세에 찌든 인간의 마음을 씻어내리는 부처님의 목소리처럼 맑았습니다. 이 작고 낡은 암자에는 한평생을 바위처럼 묵묵히 수행에만 정진해 온 혜월 스님이 머물고 계셨습니다. 스님의 연세는 이미 아흔을 훌쩍 넘겨, 얼굴에는 깊게 팬 주름이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지만, 그분의 두 눈동자만큼은 세상 그 어떤 보석보다도 맑고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흐르는 세월 앞에서는 아무리 깨달음을 얻은 고승이라 할지라도 육신의 쇠락을 피할 수는 없는 법이었습니다. 며칠 전부터 곡기를 완전히 끊으신 혜월 스님은 마른 장작처럼 야윈 몸을 누이신 채, 조용히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방 안에는 은은한 향 냄새만이 감돌았고, 스님의 숨소리는 잦아드는 바람처럼 고요하고 평온했습니다. 스님의 곁에는 열 살 남짓 된 어린 동자승만이 무릎을 꿇은 채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습니다. 부모를 잃고 산에 버려진 아이를 거두어 친손자처럼 보살펴주신 분이 바로 혜월 스님이셨기에, 어린 동자승에게 스님은 세상의 전부이자 우주와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스님... 제발 눈 좀 떠보셔요. 이렇게 저만 두고 가시면 저는 어쩌라고요. 아직 스님께 배울 불경도 많이 남아있고, 겨울이 오면 눈사람도 같이 만들기로 하셨잖아요..."
어린 동자승의 애달픈 울음소리가 좁은 방 안을 메웠습니다. 혜월 스님은 가늘게 떨리는 마른 손을 들어 아이의 동그란 머리를 쓰다듬으셨습니다. 스님의 손길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자비와 평온함이 담겨 있었습니다.
"울지 말거라, 아가야. 만남이 있으면 반드시 헤어짐이 있는 법이고, 피어난 꽃은 언젠가 지기 마련이란다. 내 육신은 비록 낡은 옷처럼 벗어던지고 떠나가지만, 이 산사의 바람 소리 속에, 네가 매일 마시는 맑은 물 속에 나의 마음은 언제나 함께 있을 것이니라.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맑은 곳으로 향하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니, 너무 슬퍼하지 말아라."
스님의 목소리는 마치 가을날의 따스한 햇살처럼 부드럽고 온화했습니다. 어린 동자승은 스님의 손을 뺨에 비비며 소리 죽여 흐느꼈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굳게 닫혀있던 방문 너머로 서늘하고 기묘한 한기가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향 냄새 사이로 짙은 흙냄새와 차가운 새벽안개의 냄새가 섞여 들어왔죠. 방 안의 촛불이 기이하게 흔들리더니, 어느새 방 한가운데에 검은 도포를 길게 늘어뜨린 창백한 얼굴의 사내가 소리 없이 서 있었습니다. 죽은 자의 영혼을 명계로 인도하는 존재, 바로 저승사자였습니다.
보통 인간들이 저승사자를 마주하게 되면 극한의 공포에 사로잡혀 비명을 지르거나 살려달라고 애원하기 마련입니다. 사자 역시 차갑고 무감각한 얼굴로 명부에 적힌 이름을 세 번 부르며 강제로 영혼을 끌고 가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었죠. 하지만 이번만은 달랐습니다. 혜월 스님의 방에 나타난 저승사자는 무리하게 쇠사슬을 꺼내지도, 무서운 얼굴로 이름을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검은 도포 자락을 조심스럽게 여미며, 바닥에 앉아 계신 혜월 스님을 향해 허리를 굽혀 정중하게 합장 인사를 올렸습니다. 그것은 평생을 티 없이 맑게 살아오며 우주의 이치를 깨달은 대덕 고승을 향한 저승사자만의 특별한 예우였습니다.
"혜월 스님, 때가 되었습니다. 먼 길을 떠나실 시간이니, 육신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시고 저와 함께 가시지요."
저승사자의 목소리는 서늘했지만, 그 안에는 깊은 존경심이 담겨 있었습니다. 혜월 스님은 저승사자를 보고도 전혀 놀라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오랜 지기를 만난 것처럼 인자한 미소를 지으시며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내 남루한 육신을 거두러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십니다. 잠시만 이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고 일어날 터이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저승사자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 한구석으로 물러나 묵묵히 서 있었습니다. 혜월 스님은 어린 동자승의 눈물을 닦아주고 마지막 다독임을 건네신 후, 천천히 눈을 감으셨습니다. 그리고 아주 길고 평온한 마지막 숨을 내쉬셨죠. 순간, 방 안을 채우던 은은한 향기가 갑자기 백 배는 더 짙어지며 방 안 가득 연꽃의 향기가 진동하기 시작했습니다. 혜월 스님의 얼굴은 잠이 든 것처럼 평온했고, 입가에는 세상을 다 품은 듯한 미소가 번져 있었습니다. 저승사자는 검은 소매를 들어 스님의 맑은 영혼을 정중히 모셔 들었습니다. 깊은 산사의 처마 끝에서 풍경 소리가 다시 한번 댕그랑 하고 울려 퍼지며, 한 위대한 고승의 입적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 2: 밀실이 되어버린 다실, 흔적 없이 사라진 육신
혜월 스님의 입적 소식은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산 아래 마을과 인근의 사찰들로 퍼져나갔습니다. 스님의 가르침을 따르던 수많은 제자들과 신도들이 슬픔을 머금고 산길을 올라 암자로 모여들었죠. 사찰의 법도에 따라 스님의 시신은 암자에서 가장 깊숙하고 서늘한 다실에 정중히 모셔졌습니다. 3일장으로 치러지는 장례 기간 동안, 시신이 모셔진 다실은 그 누구도 함부로 출입할 수 없는 신성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다실의 문은 밖에서 튼튼한 자물쇠로 굳게 잠겼고, 창문 역시 밖에서 못을 박아 단단히 고정해 두었습니다. 이는 산속의 짐승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스님의 육신이 훼손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한 엄격한 조치였습니다.
다실 밖에서는 제자들이 교대로 밤을 새워가며 불경을 외고 목탁을 쳤습니다. 슬픔에 잠긴 사람들의 독경 소리가 밤하늘을 수놓은 별빛 사이로 끝없이 울려 퍼졌죠. 특히 어린 동자승은 밥도 제대로 먹지 않은 채 굳게 닫힌 다실 문 앞에 꿇어앉아 스님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장례의 마지막 날인 사흘째 아침이 밝았습니다. 산등성이 너머로 붉은 해가 떠오르자, 주지 스님과 대중들은 스님의 시신을 다비식장으로 모시기 위해 다실 앞으로 모였습니다. 모두가 숙연한 마음으로 옷깃을 여미며 합장하고 서 있었죠.
"이제 스님의 육신을 화염 속에 모셔 자연으로 돌려보내 드릴 시간이 되었습니다. 자물쇠를 열고 문을 개방하시오."
주지 스님의 엄숙한 지시에 따라 건장한 승려 두 명이 다가와 묵직한 자물쇠를 풀었습니다. 철컥,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자물쇠가 벗겨지고, 오랜 세월을 버텨온 다실의 낡은 나무 문이 삐걱거리며 열렸습니다. 밖에서 기다리던 신도들은 스님의 평온한 마지막 모습을 눈에 담기 위해 숨을 죽이며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런데, 방 안의 풍경을 마주한 사람들의 눈동자가 일제히 커지며 여기저기서 헉 하는 경악의 탄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스님의 시신이... 시신이 보이지 않습니다!"
제일 먼저 방 안으로 들어선 주지 스님이 다급하게 소리쳤습니다. 분명 사흘 전, 깨끗한 가사 장삼을 입혀 정중하게 뉘어놓았던 혜월 스님의 육신이 감쪽같이 증발해 버린 것입니다. 방 안 한가운데에는 스님이 입고 계시던 낡은 회색 가사와 장삼만이 마치 바람이 빠진 풍선처럼 바닥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을 뿐이었습니다. 심지어 옷의 매무새나 주름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채, 그저 그 안에 들어있던 '사람의 몸'만이 완벽하게 사라져버린 기묘한 광경이었습니다.
"누가 몰래 들어와 스님의 시신을 훔쳐 간 것이 틀림없소! 당장 주변을 샅샅이 뒤져보시오!"
흥분한 신도들과 승려들이 소리치며 방 안팎을 샅샅이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다실 안은 철저한 밀실이었습니다. 밖에서 채워둔 자물쇠는 문을 열기 전까지 흠집 하나 없이 온전했고, 창문 역시 안과 밖에서 단단히 잠겨 있어 바늘 하나 들어올 틈조차 없었습니다. 바닥이나 천장 어디에도 사람이 드나들 만한 비밀 통로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사흘 밤낮을 다실 문 밖에서 수십 명의 사람들이 번갈아 가며 경을 읽고 있었으니, 그 누구도 들키지 않고 방 안으로 침입하여 성인 남자의 시신을 빼내어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완벽하게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창문도 그대로고, 자물쇠도 그대로인데... 도대체 스님의 시신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혹여 산짐승이 들어온 흔적도 전혀 없습니다."
조사를 마친 승려들의 얼굴에는 당혹감과 미스터리한 공포가 서려 있었습니다. 옷만 덩그러니 남겨둔 채 육신이 허공으로 증발해버린 이 믿을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혼란에 빠졌습니다. 어떤 이는 부처님이 스님의 육신을 통째로 극락으로 데려가신 것이라며 바닥에 엎드려 절을 했고, 어떤 이는 요괴의 짓이라며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때, 다실 구석에서 혜월 스님의 벗어놓은 가사를 멍하니 바라보던 어린 동자승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조심스럽게 주워 들었습니다. 그것은 투명하고 영롱하게 빛나는 작은 구슬 다섯 알이었습니다. 그것은 그 어떤 보석보다도 맑고 순수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죠.
"주지 스님... 이것 보셔요. 스님의 옷 속에 이 예쁜 구슬들이 남아있어요."
동자승의 손에 들린 구슬을 확인한 주지 스님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습니다. 그것은 일반적인 구슬이 아니었습니다. 오랜 세월 뼈를 깎는 수행을 통해 마음을 닦고 탐욕을 비워낸 고승의 육신에서만 나온다는 결정체, 바로 '사리'였습니다. 다비식(화장)을 치르지도 않았건만, 시신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사리만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굳게 닫힌 밀실 안에서 벌어진 이 초자연적인 기적 앞에서, 웅성거리던 사람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고 경건한 마음으로 합장을 하며 무릎을 꿇었습니다. 도대체 지난 사흘 동안, 굳게 잠긴 다실 안에서는 어떤 기묘하고도 신성한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요?
※ 3: 저승사자의 회상, 죽음의 문턱에서 나눈 차 한 잔
시간은 다시 사흘 전, 혜월 스님이 마지막 숨을 거두시고 저승사자가 스님의 영혼을 인도하려던 그 찰나의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죽음의 문턱을 넘어선 스님의 영혼은 낡고 병든 육신에서 빠져나와, 마치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가볍고 투명한 모습으로 저승사자 앞에 서 있었습니다. 수천 년 동안 수억 명의 망자들을 명계로 인도해 온 저승사자였지만, 혜월 스님의 영혼이 뿜어내는 그토록 맑고 강렬한 황금빛 기운 앞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옷깃을 여미며 경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참으로 경이로운 영혼이로구나. 세상의 온갖 탐욕과 번뇌를 끊어내고 오직 맑은 물처럼 수행에만 정진한 자의 영혼은 이토록 눈부신 빛을 내는 것인가.'
저승사자는 속으로 감탄하며 스님을 향해 다시 한번 정중하게 허리를 굽혔습니다. 명부의 법도에 따르면 죽은 자의 영혼은 그 즉시 이승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사자가 이끄는 험난한 명계의 길로 접어들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혜월 스님은 서두르는 기색 없이, 맑고 투명해진 영혼의 모습으로 다실 한구석에 놓인 낡은 다기 세트를 향해 가볍게 손을 뻗으셨습니다. 놀랍게도 스님의 영적인 기운이 닿자, 텅 비어있던 다관(찻주전자)에서 따스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향긋한 차 향기가 방 안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물리적인 찻물이 아니라, 스님의 깊은 깨달음과 영력이 만들어낸 영적인 찻물이었습니다.
"사자시여, 먼 길을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저와 함께 저승길에 오르기 전에, 잠시 자리에 앉아 이 차 한 잔으로 목을 축이시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스님의 부드러운 권유에 저승사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승사자는 이승의 음식이나 차를 마실 수 없는 존재였으며, 망자와 여유롭게 마주 앉아 차를 마시는 일 따위는 명부의 엄격한 규율에 어긋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혜월 스님이 권하는 그 영적인 찻잔에서는, 차갑게 식어버린 저승사자의 영혼마저 따뜻하게 데워줄 것 같은 깊고 오묘한 자비의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사자는 홀린 듯이 검은 도포 자락을 펄럭이며 스님과 마주 앉아, 투명한 찻잔을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받아 들었습니다.
"스님, 저는 망자를 인도하는 거친 소임을 맡은 자입니다. 이토록 귀한 대접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게다가 이승의 육신을 갓 벗어난 영혼이 어찌 이리 평온하게 도술과 같은 힘을 부리시는 겁니까?"
저승사자의 물음에 혜월 스님은 허허 웃으시며 차를 한 모금 음미하셨습니다. 스님의 영혼이 차를 넘길 때마다 그분의 투명한 몸 안에서 황금빛 연꽃이 피어나는 듯한 환상적인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자격이라니요. 생과 사는 본디 하나로 연결된 둥근 수레바퀴와 같고, 사자께서는 그 바퀴가 잘 굴러가도록 돕는 귀한 임무를 맡으셨을 뿐입니다. 제 영혼이 평온한 이유는 단 하나, 이승의 그 어떤 것에도 미련과 집착을 남겨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육신이란 그저 이번 생이라는 짧은 연극 무대 위에서 잠시 빌려 입었던 낡은 겉옷에 불과하지요. 무대에서 내려왔으니 옷을 벗어두고 홀가분하게 떠나는 것이 당연한 이치 아니겠습니까."
스님의 말씀은 깊은 산속의 옹달샘처럼 맑고 고요했습니다. 저승사자는 천천히 찻잔을 입에 가져다 대었습니다. 놀랍게도 이승의 차가운 물과 달리, 스님이 건넨 영적인 차는 사자의 입술을 적시는 순간 말할 수 없는 따뜻함과 벅찬 감동으로 변하여 그의 얼어붙은 영혼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습니다. 수천 년 동안 죽은 자들의 원망과 슬픔, 피눈물을 지켜보며 차갑게 굳어버렸던 저승사자의 심연 깊은 곳에서 이름 모를 위로의 눈물이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사자시여, 밖에서 울고 있는 저 어린 동자승이 참으로 마음에 걸렸습니다. 제가 남겨둔 육신은 껍데기에 불과하지만, 저 아이와 마을 사람들에게는 깊은 슬픔의 대상이 되겠지요. 저는 그들이 썩어갈 제 육신을 보며 죽음의 허무함을 느끼기보다는, 생명이 빛으로 돌아가는 아름다운 기적을 보며 마음의 평안을 얻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작은 선물을 남겨두고 가려 합니다."
혜월 스님의 영혼이 미소를 지으며 방 한가운데에 뉘어져 있는 자신의 죽은 육신을 가리켰습니다. 저승사자는 깜짝 놀라 그곳을 바라보았습니다. 사자의 눈앞에서 믿을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방 한가운데 평온하게 누워 있던 혜월 스님의 물리적인 시신에서, 아주 미세하고 영롱한 은빛 입자들이 반딧불이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이것은! 육신 자체가 영적인 빛으로 산화하고 있는 것인가! 어찌 인간의 몸이 불이나 흙의 도움 없이 스스로 흩어질 수 있단 말인가!'
저승사자는 찻잔을 든 채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것은 불가에서 전설로만 구전되어 오던, 가장 완벽한 깨달음을 얻어 아집과 탐욕의 찌꺼기를 완전히 소멸시킨 성자만이 보여줄 수 있다는 기적 중의 기적, '신비로운 산화'의 과정이었습니다. 스님의 육신은 부패하는 대신, 마치 수만 마리의 빛나는 나비 떼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지며 조금씩, 아주 천천히 공(空)을 향해 융화되고 있었습니다. 저승사자는 이 위대하고 거룩한 마지막 순간을 숨죽여 지켜보며, 혜월 스님의 영혼이 들려주는 깊고 평온한 찻자리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밀실 안의 기적은 그렇게 밖의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단 둘만의 숭고한 시간 속에서 조용히 완성되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 4: 육신을 벗어던진 영혼, 공(空)으로 돌아가는 기적
시간의 흐름마저 잠시 숨을 죽인 듯 고요하고 적막한 다실 안,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희미해진 그 신성한 공간에서 저승사자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눈앞에 펼쳐지는 경이로운 광경을 묵묵히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방 한가운데 정갈하게 뉘어져 있던 혜월 스님의 육신이, 마치 따스한 봄볕을 정면으로 맞이한 눈사람이 녹아내리듯 서서히 그 고정된 형태를 잃어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스님의 마른 손끝과 발끝에서부터 아주 미세하고 은은한 진줏빛 입자들이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깊은 밤 숲속을 유영하는 반딧불이의 빛처럼 여리고 아름다웠으며, 허공으로 떠오를 때마다 맑고 청아한 미세한 파열음을 내며 공간의 공기를 진동시키고 있었습니다. 그 신비로운 빛의 입자들은 점차 스님의 팔과 다리, 그리고 몸통으로 물결치듯 번져가며 육신 전체를 거대한 빛의 고치처럼 부드럽고 따스하게 감싸 안았습니다.
'불교의 심오한 가르침에서 말하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즉 눈에 보이는 형상 있는 모든 것은 본디 무상하여 결국 텅 빈 공으로 돌아간다는 그 아득한 우주의 진리가 지금 내 눈앞에서 물리적인 기적으로 시현되고 있구나. 천하를 호령하던 영웅호걸도, 세상을 다 가졌던 제왕들도 죽음 앞에서는 한 줌의 썩은 고깃덩어리로 전락하여 흙과 구더기의 밥이 되는 것이 자연의 냉혹한 섭리이거늘. 어찌 인간의 육신이 썩어 흙으로 돌아가는 그 당연한 이치를 뛰어넘어, 스스로의 영적인 힘만으로 뼈와 살을 맑은 빛으로 승화시킬 수 있단 말인가. 대체 얼마나 깊고 아득한 수행의 세월을 거치고, 얼마나 처절하게 자신의 탐욕을 깎아내야만 이런 탈인간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단 말인가.'
수천 년이라는 억겁의 세월을 명계의 사자로 살아오며 수억 명의 망자들을 지켜보았던 저승사자였지만, 이토록 티 없이 맑고 투명한 육신의 소멸 앞에서는 그저 뼛속 깊은 경외감에 사로잡혀 들고 있던 찻잔마저 바들바들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 빛으로 변해가는 육신 옆에서 평온하게 앉아 계시던 혜월 스님의 영혼은, 자신의 낡은 껍데기가 신비롭게 사라지는 그 거룩한 과정을 마치 타인의 낡은 옷이 닳아 없어지는 것을 구경하듯 몹시 무심하고도 인자한 미소로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사자시여, 그리 크게 눈을 뜨고 놀라실 것 없습니다. 본디 제가 어머니의 뱃속을 빌려 이 험한 세상에 처음 태어날 때 제 손에 쥐고 온 것은 아무것도 없는 빈손이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무대에서 내려와 떠날 때 역시 아무런 흔적도, 미련도 남기지 않고 온전한 빈손으로 자연에 돌아가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순리가 아니겠습니까. 제 육신이 흙 속에서 썩어 문드러지고 악취를 풍기는 그 흉한 과정을 굳이 생략하는 것은, 결코 제가 죽음의 문턱에서 마지막 알량한 도술을 부려 대중들에게 허세를 부림이 아닙니다. 저를 진심으로 따르고 아끼던 이들이 검게 썩어가는 제 시신을 보며 인생의 덧없음과 죽음의 공포에 절망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무거운 고통의 굴레를 훌훌 털어내고 아름다운 빛으로 돌아가는 이 산화(散化)의 과정을 통해, 죽음이란 결코 두렵거나 끔찍한 파멸이 아니라 또 다른 맑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평화로운 문이라는 사실을 그들의 가슴속에 작은 깨달음으로 남겨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스님의 영혼이 뿜어내는 따스하고 자애로운 파동이 방 안을 가득 채우며 저승사자의 차가운 뺨을 어루만졌습니다. 스님의 육신을 이루고 있던 은빛과 황금빛 입자들은 허공을 유유히 맴돌며 황홀한 군무를 추다가, 이내 굳게 닫힌 다실의 벽과 천장 너머 밤하늘의 쏟아지는 별빛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완벽하게 사라졌습니다. 육신이 온전히 빠져나간 자리에는 혜월 스님이 평생을 입고 계시던 낡고 거친 회색 가사와 장삼만이 남았습니다. 놀랍게도 그 옷가지들은 그 어떤 흩어짐이나 구김살도 없이, 그저 안에 있던 몸만 쏙 빠져나간 것처럼 텅 빈 채로 방바닥에 고스란히 내려앉았습니다. 그런데 육신이 모두 빛으로 산화하고 난 그 텅 빈 가사의 한가운데에서, 오직 단 다섯 개의 아주 작은 물질만이 빛으로 변하지 않고 영롱한 형태로 옹기종기 모여 남겨졌습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다는 금강석보다 굳건하고, 깊은 산속의 수정보다 맑으며, 밤하늘의 교교한 달빛보다 은은하게 스스로 빛을 발하는 다섯 알의 오색찬란한 사리(舍利)였습니다. 불의 뜨거운 열기를 빌려 뼈를 태우는 고통스러운 다비식조차 거치지 않았음에도, 스님의 맑은 몸속에 응어리져 있던 순수한 자비심과 평생을 바친 깊은 깨달음의 결정체만이 이승에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마지막 위로의 선물처럼 신비롭게 맺혀 있었던 것입니다.
"자, 이제 제가 이승이라는 여관에 잠시 머물며 해야 할 모든 숙제가 진정으로 끝이 난 듯합니다. 제가 육신 대신 남긴 저 작은 구슬 다섯 알은 밖에서 밤을 새워가며 울고 있을 어린 동자승과 저를 따르던 제자들의 깊은 슬픔을 달래줄 작은 위안의 징표가 되겠지요. 사자시여, 융숭한 대접은 아니었으나 맛있는 차도 함께 나누어 마셨고 육신의 무거운 짐도 완벽하게 벗어던졌으니, 이제 그만 저를 명계의 길로 인도해 주시지요. 더 이상 이승에 지체하여 귀한 사자의 공적인 업무에 방해를 드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혜월 스님의 영혼은 들고 있던 투명한 찻잔을 다탁 위에 조용히 내려놓고 가볍게 자리에서 일어나, 저승사자를 향해 두 손을 모아 합장했습니다. 저승사자 역시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검은 도포 자락을 단정히 여미며, 혜월 스님을 향해 허리를 깊숙이 숙여 명계의 왕에게나 올릴 법한 최고의 예를 갖추었습니다.
"스님, 천만의 말씀이십니다. 스님과 마주 앉아 고요히 나눈 이 짧은 찻자리는, 수천 년의 세월 동안 망자들의 원망과 절규 속에서 차갑게 얼어붙어 있던 제 불쌍한 영혼을 따뜻하게 녹여준 실로 벅찬 기적이었습니다. 세상에 넘쳐나는 억만 명의 영혼들 중에서도 스님처럼 맑고 고귀한 영혼을 직접 길 안내하게 되어, 저야말로 이루 말할 수 없는 무한한 영광을 입었습니다. 자, 이제 제가 명계의 맑고 푸른 강물이 흐르는 극락의 초입까지 제 모든 정성을 다하여 스님을 가장 편안하고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사자의 정중하고도 깍듯한 안내를 받으며, 혜월 스님의 가벼운 영혼은 굳게 닫혀있던 다실의 나무 문을 물 흐르듯 부드럽게 통과해 밖으로 나섰습니다. 문을 밖에서 가로막고 있던 튼튼하고 무거운 무쇠 자물쇠도, 이승의 두꺼운 물리적인 벽도 더 이상 거룩한 빛으로 변한 스님의 영혼을 단 1할도 가로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밀실이 되어버린 고요한 다실 안에는, 큰스님의 숭고한 자취를 온몸으로 증명하는 텅 빈 가사와 영롱하게 반짝이는 다섯 알의 사리, 그리고 공간을 가득 채운 은은한 연꽃 향기만이 남았습니다. 그것은 다음 날 아침 문이 열리고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세상에 전해질 위대한 기적을 위해, 밤의 적막 속에서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 5: 남겨진 자들의 슬픔을 어루만지는 보이지 않는 손길
명계의 법도를 주관하는 저승사자의 정중한 안내를 받으며, 굳게 닫힌 다실의 문을 통과하여 밤의 장막이 내려앉은 밖으로 나선 혜월 스님의 영혼은, 이승을 떠나 명계로 향하는 구름길에 오르기 전 아주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깊고 짙은 어둠이 무겁게 내려앉은 산사의 밤, 입김이 하얗게 서릴 정도로 차가운 서리가 내리는 다실 문밖에는 며칠 전부터 스님의 곁을 묵묵히 지키던 앳된 동자승이 홀로 엎드려 있었습니다. 다른 어른 승려들은 교대를 핑계로 잠시 자리를 비웠지만, 이 어린 아이만큼은 뼈를 파고드는 피곤함과 지독한 추위마저 잊은 채 다실 앞 차가운 돌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습니다. 벌겋게 언 조그만 두 손을 싹싹 비비듯 모아 합장하고는, 쉴 새 없이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서툰 발음으로 불경을 외고 있었죠. 그 가녀리고 작은 어깨가 추위와 걷잡을 수 없는 슬픔으로 바들바들 떨리는 모습은, 지나가는 바람마저 발걸음을 멈추게 할 만큼 보는 이의 가슴을 시리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아이고, 가엾고 안쓰러운 것. 부모의 얼굴도 모르는 핏덩이를 거두어 내 자식처럼 길렀거늘, 내가 떠나버린 이 거대한 빈자리가 저 여리고 작은 아이의 가슴에 이토록 시리고 매서운 눈보라를 불어넣고 있구나.'
하늘 위로는 망자를 부르는 명계의 거대한 입구가 활짝 열려 신비로운 빛을 내뿜으며 스님을 재촉하고 있었지만, 혜월 스님의 발걸음은 도무지 땅에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승에 대한 미련은 티끌만큼도 남지 않았으나, 남겨진 생명에 대한 크나큰 자비심이 스님의 영혼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은 것입니다. 스님은 곁에 선 저승사자를 향해 조용하고 간절한 양해를 구하는 눈빛을 보냈습니다. 원칙대로라면 한시라도 지체 없이 망자를 이끌고 이승을 떠나야 하는 저승사자였지만, 그는 이미 스님의 차 한 잔에 영혼이 감화된 상태였습니다. 사자는 그 숭고하고 따뜻한 마음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듯, 아무런 재촉 없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한 걸음 조용히 물러섰습니다.
스님의 맑고 투명한 영혼은 소리 없이 다가가, 바닥에 엎드려 서럽게 울고 있는 어린 동자승의 굽은 등 뒤에 가만히 섰습니다. 비록 육신은 이미 흩어져 아이를 번쩍 안아 올려줄 물리적인 두 팔과 가슴은 남아있지 않았지만, 스님은 자신의 맑고 거대한 영적인 기운을 보이지 않는 장막처럼 넓게 펼쳐내어 아이의 바들바들 떨리는 몸을 아주 포근하고 따뜻하게 감싸 안으셨습니다. 생전에 아이가 잠투정을 부릴 때 토닥여주던 그 품처럼, 넉넉하고 온화한 기운이었습니다.
그 순간, 늦가을의 차가운 산바람이 매섭게 칼춤을 추며 쌩쌩 불어대던 다실 앞마당에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신비로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살을 에이던 매서운 밤공기가 일순간 화사한 봄날의 정오 햇살처럼 다사롭고 훈훈하게 변하더니, 어디선가 부드럽고 따스한 산들바람이 불어와 동자승의 눈물범벅이 된 차가운 두 뺨을 어미의 손길처럼 다정하게 어루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평소 혜월 스님의 승복에서 나던 향긋하고 맑은 연꽃의 향기가 밤바람에 실려 아이의 꽁꽁 언 코끝을 부드럽게 간지럽혔죠.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어 목이 메도록 불경을 외던 동자승은, 갑자기 자신의 온몸을 푹신하게 감싸는 그 비현실적인 포근한 온기와 향기에 깜짝 놀라 엎드려 있던 고개를 번쩍 들었습니다. 아이의 눈앞에는 굳게 닫힌 다실의 무거운 낡은 문과 칠흑 같은 산속의 어둠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가슴 가장 깊고 맑은 곳에서, 너무나도 익숙하고 그리워 마지않던 혜월 스님의 목소리가 웅장하면서도 한없이 부드럽게 메아리치며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울지 말거라, 나의 귀하고 어여쁜 아가야. 네가 흘리는 뜨거운 눈물방울 하나하나가 내 마음을 예리하게 찌르는 아픈 가시가 되어 내 발걸음을 무겁게 하는구나. 나는 결코 너를 이 차가운 산사에 홀로 버려두고 떠난 것이 아니란다. 가만히 눈을 감고 느껴보아라, 내가 늘 너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느냐. 내 낡은 몸뚱이는 비록 이 산사에 머물지 않으나, 지금 네 눈물을 닦아주는 따스한 바람 속에, 내일 네가 눈을 뜨면 마주할 눈부신 아침 햇살 속에, 네가 목을 축일 맑은 계곡물 속에, 그리고 무엇보다 부처님을 향한 네 맑은 가슴속에 나는 언제나 너와 함께 숨 쉬고 살아있을 것이니라. 그러니 이제 그만 그 슬픈 눈물을 거두고, 부처님의 한없이 자비로운 빛 아래서 세상 누구보다 씩씩하고 지혜로운 승려로 자라나거라. 나의 사랑하는 아가야.'
그것은 인간의 귀의 고막을 통해 듣는 소리가 아니라, 티 없이 맑은 영혼과 영혼이 맞닿아 주파수를 맞추며 전달되는 깊고 진실한 울림이었습니다. 동자승은 커다랗고 동그란 눈을 끔벅이며 허공을 두리번거렸습니다. 눈에 보이는 곁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상하게도 가슴 전체를 무겁게 짓누르고 숨을 막히게 하던 끔찍한 슬픔의 거대한 바위 덩어리가 봄눈이 스르르 녹아내리듯 부드럽게 사라지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할아버지 스님이 항상 자신을 등 뒤에서 안아주실 때 나던 그 특유의 포근한 향기와 온도가 선명하게 느껴지자, 동자승은 마침내 서러운 울음을 뚝 그치고 소매로 눈물을 벅벅 닦아냈습니다. 그리고는 굳게 닫힌 다실 문을 향해 활짝, 눈물이 맺힌 채로 빙그레 맑은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스님... 저희 할아버지 스님. 맞으시지요? 스님께서 저 혼자 두고 가신 게 미안해서 위로해 주러 다시 오신 거지요? 예, 알겠습니다. 저 이제 떼쓰며 울지 않을게요. 스님 말씀대로 밥도 한 그릇 뚝딱 다 먹고 불경도 밤낮으로 열심히 외우면서, 스님처럼 맑고 지혜로워서 남들을 도와주는 훌륭한 스님이 될게요. 그러니까 제 걱정일랑 훌훌 털어버리시고, 좋은 곳으로 편안하게 극락왕생하셔요. 저 진짜 안 울어요!"
아이는 아직 빨개진 코를 훌쩍이면서도, 언 손을 야무지게 모아 합장하며 허리 굽혀 다실을 향해 깊은 삼배를 올렸습니다. 아이의 그 맑고 당찬 다짐을 가슴으로 들은 혜월 스님의 영혼은 그제야 마음의 짐을 완벽하게 내려놓은 듯, 얼굴에 세상에서 가장 환하고 자애로운 미소를 띠우셨습니다. 스님의 영혼에서 뿜어져 나온 눈부신 황금빛 입자들이 마지막으로 아이의 동그란 머리 위로 은은하게 쏟아져 내리며 영원한 가호와 축복을 내렸습니다.
이 가슴 뭉클한 이별의 광경을 묵묵히 지켜보던 저승사자의 메마른 가슴 속에도 커다란 해일과 같은 깊은 파문이 일었습니다. 죽음이라는 절대적이고 파괴적인 공포 앞에서도 자신의 명운보다 타인의 슬픔을 먼저 어루만지고, 자신의 존재를 대자연의 일부로 승화시켜 남겨진 자들에게 시들지 않는 희망과 위로를 건네는 스님의 거룩한 모습은, 저승사자에게도 진정한 자비와 사랑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참으로 위대하고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영혼이십니다. 스님께서 베푸신 이 마지막 자비의 온기가 저 어린아이의 가슴에 평생을 흔들림 없이 살아갈 아주 든든한 등대가 되었군요. 자, 이제 이승에 남겨두신 더 이상의 미련이나 아쉬움은 없으시겠지요."
"예, 사자시여. 기다려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제 마음은 이제 저 높은 가을 하늘을 떠도는 한 점의 흰 구름처럼 한없이 가볍고 홀가분하기 그지없습니다. 자, 이제 정말로 발걸음을 돌려 먼 길을 떠나보지요."
스님은 마지막으로 자신이 한평생을 바쳐 수행했던 정든 암자의 풍경을 눈과 마음에 쓱 담아두신 후, 미련 없이 뒤돌아 저승사자의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두 영혼은 달빛이 은빛으로 부서져 내리는 고요하고 맑은 산길을 따라, 하늘을 향해 끝없이 놓인 빛의 길 위로 천천히 구름을 밟듯 걸음을 옮겼습니다. 처마 끝에 매달린 낡은 청동 풍경이 그들의 성스러운 발걸음에 화답하듯, 바람의 도움 없이도 다시 한번 맑고 청아한 소리를 내며 흔들렸습니다. 댕그랑. 깊어가는 늦가을 산사의 밤은 이별의 비통한 슬픔이 아닌, 거룩한 평온함과 영원한 깨달음의 빛나는 기운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습니다.
※ 6: 바람이 되어 흩어진 스님, 그리고 영원한 깨달음의 메아리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다시 현재, 다실 문을 둘러싸고 있던 무거운 자물쇠를 열고 들어갔으나 혜월 스님의 육신이 감쪽같이 증발해 버린 것을 확인한 장례의 사흘째 아침으로 돌아옵니다. 도무지 상식적으로 해석할 수 없는 완벽한 밀실의 미스터리 앞에서, 당혹감과 원초적인 공포에 휩싸여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며 웅성거리던 수십 명의 대중들은 숨을 죽였습니다. 앳된 동자승이 방바닥에서 텅 빈 가사를 뒤적이다 주워 든 다섯 알의 영롱한 사리를 확인하는 순간, 그곳에 모인 모든 이들은 벼락을 맞은 듯한 거대한 충격과 밀려오는 경외감에 빠져들며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밤새 굳게 닫혀있던 방 안을 은은하게, 그러나 묵직하게 가득 채우고 있는 신비로운 연꽃 향기와 사람의 흔적만 완벽하게 빠져나간 채 온전하게 남겨진 가사 장삼. 이 모든 뚜렷한 정황들은 단 하나의 경이롭고도 거룩한 진실을 온몸으로 웅변하며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악의를 품고 스님의 시신을 몰래 훔쳐 간 것이 아니라, 혜월 스님 스스로 수십 년간 갈고닦은 영적인 맑은 힘으로 자신의 고단한 육신을 찬란한 빛으로 산화시켜 영원한 공(空)의 세계로 돌아가셨다는 것을 말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부처의 경지에 도달한 위대한 이적(異蹟)이었습니다.
다실을 겹겹이 에워싸고 있던 대중들의 눈에서 기괴한 일에 대한 두려움의 빛은 완벽하게 사라지고, 그 자리를 대신하여 뜨거운 감격과 형언할 수 없는 환희의 눈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깊은 깨달음을 얻어 인간이 가진 본능적인 탐욕의 껍데기를 온전히 벗어던진 위대한 성자의 마지막 순간을 자신들의 두 눈으로 직접 목도했다는 사실은, 그곳에 모인 제자들과 신도들 모두에게 평생 잊지 못할 가장 강렬하고 눈부신 가르침이 되었습니다. 백 번의 설법보다도 강력한 무언의 설법이었습니다.
장례를 주관하던 주지 스님은 감격에 겨워 덜덜 떨리는 두 손으로 동자승이 내민 오색찬란한 사리 다섯 알을 두 손으로 소중히 건네받았습니다. 그리고 준비해 둔, 안이 비어있던 황금으로 장식된 작은 연꽃 모양의 사리함에 구슬들을 정성스럽게 나누어 담았습니다. 이내 다실 밖에 엎드려 굵은 눈물을 훔치고 있는 대중들을 향해 몸을 돌려, 몹시 인자하면서도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는 목소리로 장엄하게 입을 열었습니다.
"존경하는 사부대중 여러분, 더 이상 엎드려 슬피 울거나 이 신비로운 현상에 두려워하며 동요하지 마십시오. 우리들의 존경하는 혜월 큰스님께서는 밤사이 도둑을 맞으시거나 짐승에게 흉한 일을 당하신 것이 결코 아닙니다. 큰스님께서는 필멸의 육신이 며칠에 걸쳐 흉하게 썩어가는 고통과 인생의 허무함을 부족한 우리 제자들에게 남기지 않으시려 한 것입니다. 스스로 닦아오신 무량한 영력으로 당신의 몸을 맑고 깨끗한 빛으로 승화시켜, 바람과 햇살을 품은 거대한 대자연의 품으로 자유롭게 흩어지신 것입니다. 오직 스님의 맑은 정신과 순수한 자비의 결정체인 저 빛나는 사리 다섯 알만을 우리에게 남겨두시고 말입니다!"
주지 스님의 목소리가 고요한 산사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습니다. 사람들은 합장한 손을 이마에 대며 주지 스님의 이어지는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는 혜월 스님께서 한평생을 바쳐 쉼 없이 정진하여 도달하신 완벽한 해탈의 완성이요, 생사를 가볍게 초월한 부처님의 위대한 이치를 우리 두 눈앞에 몸소 증명하여 보여주신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그러니 오늘 이 시간부터 우리는 눈물 짓고 애통해하며 검은 상복을 입는 장례식을 치를 것이 아닙니다. 큰스님의 위대한 가르침을 온 마음으로 기리고, 그분이 허울을 벗고 영원한 평안과 진리에 드셨음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기쁘고 성대한 축제를 열어야 할 것입니다!"
주지 스님의 장엄하고도 벅찬 선언이 끝나자, 산사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비통하고 슬픈 공기는 아침 안개가 걷히듯 사라지고, 맑고 눈부신 환희의 기운으로 완벽하게 뒤바뀌었습니다. 승려들은 손에 쥔 목탁을 경쾌하게 두드리며, 망자의 혼을 달래는 슬프고 낮은 독경 대신 깨달음의 기쁨을 찬양하는 밝고 웅장한 불경을 소리 높여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신도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로의 흙 묻은 손을 마주 잡고 환희의 눈물을 흘리며 혜월 스님의 극락왕생을 진심으로, 아주 밝은 표정으로 축원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지난 사흘 내내 다실 문 앞을 떠나지 않고 가장 슬피 울었던 어린 동자승의 변화가 가장 놀라웠습니다. 동자승은 지난밤 어둠 속에서 자신의 굽은 등 뒤로 다가와, 꽁꽁 언 뺨을 다정하게 감싸 안아주었던 할아버지 스님의 따스한 영혼을 떠올리며 더 이상 슬픈 눈물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텅 비어버린 낡은 다실을 향해 활짝, 세상에서 가장 해맑고 예쁜 미소를 지으며 꾸벅 고개를 숙여 깊은 감사의 인사를 올렸습니다. 스님이 항상 바람 속에, 햇살 속에 함께 하겠다는 그 약속을 굳게 믿게 된 것입니다.
다실의 낡은 지붕 위로, 눈부신 아침 햇살이 가파른 산등성이를 훌쩍 넘어와 온 암자의 마당과 사람들의 얼굴을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비출 무렵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아주 높은 지붕 위, 어디선가 형체를 완벽하게 숨긴 채 이 모든 아름답고 경이로운 광경을 팔짱을 낀 채 묵묵히 내려다보고 있던 한 존재가 있었습니다. 바로 간밤에 혜월 스님을 명계의 극락 문턱까지 안전하게 배웅하고 막 돌아온 저승사자였습니다. 평소 망자들의 울음소리에 지쳐 늘 창백하고 딱딱하게 굳어있던 저승사자의 입가에는, 수천 년의 긴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지어본 적 없는 옅고 부드러운, 아주 평온한 미소가 아스라이 번져 있었습니다. 인간의 죽음이란 늘 억울한 원망과 찢어지는 통곡, 그리고 끔찍한 절망의 몸부림으로만 가득한 지옥 같은 잿빛 풍경이라고 굳게 믿어왔던 사자의 세계관은, 혜월 스님과의 짧지만 강렬했던 찻자리 만남을 통해 완전히 밝고 새로운 색깔로 물들여진 것입니다.
'스님의 육신은 비록 흔적도 없이 사라져 허공의 바람이 되고 빛이 되었지만, 스님이 이 세상에 남기신 저 영원한 깨달음의 메아리와 따뜻하고 거대한 자비의 사랑은, 남겨진 수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절대 시들지 않는 아름다운 연꽃으로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이다. 그래, 진정한 생명력이란 눈에 보이는 육신의 형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세상에 남기고 간 맑은 기운과 선한 영향력에 있는 것이로구나.'
저승사자는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차오르는 커다란 깨달음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혜월 스님이 마지막까지 머물렀던 텅 빈 다실을 향해 마지막으로 정중하고 깍듯한 목례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길게 늘어진 검은 도포 자락을 펄럭이며, 산등성이를 감싸는 뽀얀 아침 안개 속으로 서서히 모습을 감추며 자신의 자리인 명계로 돌아갔습니다.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과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깃털처럼 가볍고 홀가분해 보였습니다.
깊고 푸른 가을의 산사, 혜월 스님의 육신은 굳게 닫힌 기묘한 밀실 안에서 한 줌의 재도 남기지 않고 감쪽같이 증발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스님의 맑고 온화했던 기운은 암자 마당을 이리저리 뒹구는 샛노란 은행잎 속에, 처마 끝에서 맑은 소리로 울어대는 풍경 소리 속에, 그리고 티 없이 해맑은 동자승의 따스한 미소 속에 영원토록 짙게 스며들어 살아 숨 쉬고 있었습니다. 죽음이란 모든 인연과 존재의 끝이 아니라, 더 맑고 거대한 우주의 일부로 돌아가는 지극히 평화롭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정임을 속삭이듯이 말입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산사의 구석구석을 맴도는 은은하고 맑은 연꽃 향기가, 오늘따라 유난히 복잡한 우리들의 마음을 부드럽고 편안하게 어루만져 줍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오늘의 저승사자 야담, '죽음 후 사라진 스님' 이야기, 어떻게 들으셨나요? 죽음마저 두려움이 아닌 맑은 빛으로 승화시켜 남은 이들에게 위로를 전한 혜월 스님의 마지막 모습이 마음을 참 평안하고 따뜻하게 만들어 줍니다. 저승사자마저 눈물짓게 한 그 차 한 잔의 온기가 여러분의 마음에도 전해졌길 바랍니다. 팍팍한 일상 속에서 오늘 이야기가 작은 힐링이 되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따뜻한 댓글 부탁드립니다. 다음에도 여러분의 영혼을 다독여 줄 편안하고 기묘한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평안한 밤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