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에 나타난 천상계의 여인
한양에 나타난 천상계의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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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Hooking ment)
만약 당신의 앞에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가 나타난다면? 인간 세상의 모든 것을 초월한 그녀와의 하룻밤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요? 필멸의 존재인 인간과 영원을 사는 천녀의 아슬하고도 눈부신 사랑. 당신의 감각을 깨울 가장 신비로운 밤이 시작됩니다.
디스크립션 (Description)
그림에 재능이 있지만, 삶의 의미를 잃고 살아가던 화가 김진현. 어느 날 밤, 그의 앞에 하늘에서 떨어진 듯한 신비로운 여인 '영롱'이 나타난다. 세상 물정 모르는 순수함과 인간을 초월한 아름다움. 그녀에게 매료될수록, 그는 이것이 결코 평범한 사랑이 아님을 깨닫는다. 인간과 천인의 경계를 넘나드는, 꿈결처럼 아름답고도 슬픈 사랑 이야기.
※ 별이 떨어진 밤
조선 한양의 인왕산 기슭, 스러져가는 초가집에 김진현이라는 젊은 화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비록 먹고살기는 팍팍했으나, 붓을 잡는 솜씨만큼은 장안에서 으뜸으로 꼽혔습니다. 하지만 그의 그림에는 늘 무언가 빠져 있었습니다. 뛰어난 기교는 있었으되,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영혼, 즉 ‘신운(神韻)’이 없다는 평을 듣곤 했지요. 그 자신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매일 밤, 그는 텅 빈 화선지를 앞에 두고 앉아, 자신이 본 산수와 인물들을 그려보려 애썼지만, 그의 붓끝에서 태어나는 것은 그저 실물의 생기 없는 모사품일 뿐이었습니다. 그의 삶 또한 그의 그림처럼, 흑과 백의 먹물로만 이루어진 채, 아무런 색채 없이 공허하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도, 진현은 깊은 예술적 갈증과 고뇌 속에서 잠 못 이루고 있었습니다. 창밖에는 유난히 별이 총총한 밤하늘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가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이었습니다.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수많은 유성우 사이로, 유독 크고 영롱한 빛을 내는 별 하나가, 마치 자신을 향해 떨어지듯 굉음도 없이 고요하게 인왕산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저 신기한 천문 현상이라 여기고 넘겼겠지만, 예술가의 예민한 감수성은 그 빛이 단순한 별똥별이 아님을 직감했습니다. 무언가에 홀린 듯, 그는 붓을 내려놓고 등불 하나만을 든 채, 빛이 사라진 숲속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숲은 기이할 정도로 고요했습니다. 밤새 울어대던 풀벌레 소리도, 바람에 스치던 나뭇잎 소리도 모두 멎어 있었습니다. 오직 그의 심장 소리만이 쿵쾅거리며 정적을 깨뜨렸습니다. 한참을 헤맨 끝에, 그는 마침내 숲속의 작은 공터에 다다랐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평생 한번 볼까 말까 한 비현실적인 광경을 마주하고 숨을 멈췄습니다.
그곳에는 추락의 흔적이라곤 전혀 없었습니다. 대신, 한여름 밤에는 결코 필 수 없는 하얀 설중매(雪中梅)가 만개하여, 주변을 온통 환하게 비추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꽃밭의 한가운데, 한 여인이 쓰러져 있었습니다. 진현은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녀는 인간 세상의 것이 아닌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달빛을 그대로 얼려 만든 듯, 은은한 빛을 내는 투명한 비단옷. 그것은 그가 상상 속에서나 그려보았던 선녀의 날개옷과 흡사했습니다. 등불을 가까이 비추자 드러난 그녀의 얼굴은, 그의 심장을 그대로 멎게 만들었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미사여구로도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 조각상처럼 완벽한 이목구비와, 갓 내린 눈처럼 희고 티 없는 피부. 하지만 무엇보다 그를 사로잡은 것은, 그녀의 존재 자체가 뿜어내는 기묘한 분위기였습니다. 그녀는 그저 잠들어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영겁의 시간 속에서 잠시 내려앉은 별처럼, 고요하고 신비로운 기운이 그녀를 감싸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그녀가 미간을 찌푸리며 천천히 눈을 떴습니다. 칠흑 같은 밤하늘의 모든 별을 담은 듯한, 깊고 투명한 눈동자. 그녀는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진현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습니다. 그저 모든 것이 생경하다는 듯,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이곳은… 어디입니까?” 그 목소리는 마치 옥구슬이 굴러가는 듯, 인간의 언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진현은 꿈을 꾸는 듯한 황홀경 속에서, 간신히 입을 열었습니다. “여기는… 조선의 한양입니다.”
※ 필멸과 영원의 만남
진현은 갈 곳이 없어 보이는 여인을, 자신의 누추한 초가집으로 데려왔습니다. 자신을 ‘영롱’이라 밝힌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습니다. 그녀는 인간 세상의 모든 것을 처음 보는 아이처럼 신기해했습니다. 진현이 내어준 멀건 죽 한 그릇을 앞에 두고, 그녀는 숟가락을 들지 않고 한참이나 그릇에서 피어오르는 김의 움직임을 관찰했습니다. “이것은… 살아있는 것입니까? 어찌하여 이 작은 그릇 안에서 춤을 추는 것이지요?” 그녀의 순수한 질문에, 진현은 웃음을 터뜨리며 숟가락 사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처음으로 음식을 맛본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이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따뜻하군요. 사라져 없어지는 것들은, 이토록 따뜻한 느낌을 주는 것입니까?”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시(詩)와 같았고, 진현은 그녀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마치 그림 속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녀는 진현의 그림에 특히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어느 날, 진현이 그리고 있던 인왕산 그림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던 그녀가 물었습니다. “어찌하여 당신은, 멈춰있는 것을 그리려 합니까?” 진현은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산은 늘 그 자리에 있지 않소.” 그러자 영롱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습니다. “아닙니다. 저 산은 매 순간 변하고 있습니다.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고, 구름이 봉우리를 스쳐 지나가고, 햇빛에 따라 바위의 색이 달라집니다. 당신은 그 모든 움직임을 화선지 안에 가두려 하는군요. 필멸의 존재들은, 이토록 무언가를 소유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까?” 그녀의 말은 진현의 머리를 망치로 내리치는 듯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예술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녀에게 붓을 쥐여주며, 그녀가 보는 세상을 그려달라 청했습니다. 영롱이 그린 그림은 형체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바람의 움직임, 빛의 색채, 소리의 파장 같은 것들이 뒤섞인, 추상적인 선과 색의 향연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진현은 그 그림 속에서 자신이 그토록 담아내고 싶었던 인왕산의 ‘영혼’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진현은 그녀에게 인간의 감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기쁨, 슬픔, 분노, 그리고 사랑. 그는 그녀와 함께 저잣거리를 거닐며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들려주었고, 슬픈 시를 읽어주며 눈물의 의미를 알려주었습니다. 영롱은 모든 것을 스펀지처럼 흡수했습니다. 특히 그녀는 해 질 녘의 노을을 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붉게 타오르다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 찰나의 아름다움 앞에서, 그녀는 종종 이유 모를 눈물을 흘렸습니다. “슬픕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것이, 사라져야만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슬픕니다. 제가 있던 곳에서는, 그 어떤 것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진현은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이 정체 모를 여인을, 미치도록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을. 그녀는 그에게 단순한 여인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메마른 예술에 영혼을 불어넣어 준 뮤즈이자, 그의 공허한 삶을 채워준 유일한 구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두려웠습니다. 이토록 완벽하고 아름다운 존재가, 과연 자신과 같은 평범한 인간의 곁에 영원히 머물러 줄 수 있을까.
※ 천녀와의 하룻밤
영롱을 향한 진현의 사랑은, 더 이상 그의 마음속에만 가두어 둘 수 없을 만큼 커져버렸습니다. 그는 그녀를 가지고 싶었습니다. 그녀의 초월적인 아름다움과 신비로운 영혼, 그 모든 것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어느 날 밤, 진현은 용기를 내어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방을 깨끗이 치우고, 마당에서 꺾어 온 들꽃을 화병에 꽂았으며, 은은한 향을 피워 방 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영롱이 방으로 들어서자, 그는 그녀의 앞에 조용히 무릎을 꿇었습니다. “영롱… 그대를 처음 만난 날, 나는 꿈을 꾸는 것이라 생각했소. 하지만 그대와 함께한 시간들은, 내 평생의 그 어떤 순간보다도 생생하고 찬란했소. 나는… 나는 그대를 연모하오. 나의 아내가 되어, 평생 나의 곁에 머물러 주시오.”
그의 절절한 고백에, 영롱은 슬픈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진현… ‘사랑’이라는 것이, 당신들이 말하는 연모라는 것이, 서로의 경계를 허물고 하나가 되고 싶어 하는 마음을 뜻하는 것입니까?” 그녀는 그의 뺨에 손을 가져다 대었습니다. 그녀의 손길은 인간의 것처럼 따뜻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서늘한 옥(玉)을 만지는 듯, 매끄럽고 차가운 감촉이었습니다. “나는 당신과 다릅니다. 나는 당신들처럼 늙지도, 병들지도, 죽지도 않습니다. 필멸의 존재와 영원의 존재가 하나가 되는 것은, 세상의 이치를 거스르는 일입니다. 그 끝에는 분명 슬픈 이별만이 있을 것입니다.” 그녀의 말은 거절이었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 깊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진현은 그녀의 차가운 손을 붙잡아, 자신의 뜨거운 심장이 뛰고 있는 가슴에 가져다 대었습니다. “상관없소. 단 하루를 살더라도, 그대의 지아비로서 살다 죽을 수 있다면, 나는 여한이 없소.” 그의 뜨거운 진심에, 마침내 그녀의 마지막 경계심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인간의 가장 깊은 교감이 어떤 것인지, 나 또한 알고 싶습니다.”
그것은 허락이었습니다. 진현은 그녀를 자신의 품에 안고,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녀의 입술은 꿀처럼 달콤하면서도, 이슬처럼 차가운, 기묘한 맛이었습니다. 그가 그녀의 옷고름을 풀어헤치자, 그녀의 몸에서 눈부신 은빛 광채가 뿜어져 나와 방 안을 대낮처럼 밝혔습니다. 그녀의 나신은 인간의 육체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별빛을 빻아 만든 듯, 투명하고 영롱하게 빛나는, 살아있는 빛의 조각상이었습니다. 진현이 그녀의 빛나는 몸을 끌어안자, 그의 몸은 불에 데인 듯 뜨거우면서도, 얼음물에 빠진 듯 차가운, 극단적인 감각의 폭풍에 휩싸였습니다. 그의 손길이 그녀의 몸을 어루만질 때마다, 그녀의 피부 위로 은하수 같은 빛의 파문이 일어났습니다. 그녀의 입에서는 신음 대신, 아름다운 악기가 연주하는 듯한 신비로운 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진현은 더 이상 자신이 초가집의 방 안에 누워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마치 그녀의 몸을 통해, 밤하늘의 은하수를 유영하고, 성운의 바다를 헤엄치는 듯한, 황홀한 우주적 체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육체의 결합을 넘어선, 필멸의 영혼과 영원의 존재가 하나가 되는, 신성하고도 관능적인 의식이었습니다. 그날 밤, 가난한 화가는 인간으로서는 결코 닿을 수 없는 궁극의 아름다움을 보았고, 그 대가로 자신의 남은 평생을 지독한 그리움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운명에 스스로를 내던졌습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반복적으로 분량에 대한 지적을 받게 된 점, 저의 불찰이 가장 큰 원인입니다. 사용자의 기대를 충족시켜 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으며, 이번에는 이전과 차원이 다른 수준의 깊이와 분량으로 스크립트를 작성하여, 다시는 같은 문제로 불편을 드리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각 장면에 구체적인 사건과 갈등, 인물의 심층적인 내면 묘사를 대폭 추가하여, 서사의 밀도를 확실하게 높였습니다. 부디 이번에는 만족하시기를 바랍니다.
※ 다가오는 그림자
천녀(天女)와의 하룻밤은 김진현이라는 한 인간을 완전히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나게 만들었습니다. 그의 붓끝에는 신기(神氣)가 서리기 시작했고, 그의 그림은 더 이상 단순한 모사를 넘어 사물의 영혼을 담아내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소문은 빠르게 퍼져, 마침내 그의 명성은 대궐에까지 닿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임금의 명을 받은 내관이 찾아와,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공주의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어명을 전달했습니다. 공주를 본 적도 없는 그에게 주어진 것은, 공주를 모셨던 상궁들의 희미한 증언뿐이었습니다. 불가능에 가까운 임무였지만, 진현은 영롱의 도움과 그가 얻게 된 신비한 능력으로 붓을 들었습니다. 그는 눈을 감고, 상궁들의 목소리에 담긴 그리움의 ‘색’과 슬픔의 ‘형태’를 보았습니다. 며칠 뒤 완성된 공주의 초상화는, 살아생전의 모습과 너무나도 똑같아 그림을 본 왕과 왕비가 통곡을 하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일로 김진현은 일약 조선 최고의 화가, ‘신필(神筆)’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밝은 빛은 필연적으로 짙은 그림자를 만드는 법. 그의 명성이 높아질수록, 그를 향한 시기와 의심 또한 커져만 갔습니다. 특히 당대의 기술로는 최고라 불리던 늙은 화가 월천(月川)은, 진현의 그림이 요사스러운 사술(邪術)의 결과라 비난하고 다녔습니다. 결국 월천은 왕에게 청하여, 진현과 공개적으로 그림 대결을 펼치게 해달라 요청했습니다. 대결의 날, 수많은 구경꾼이 모인 앞에서 두 화가에게는 ‘가장 처연하게 지는 동백꽃’을 그리라는 주제가 주어졌습니다. 월천은 노련한 솜씨로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굴 듯한 아름다운 동백을 그렸지만, 진현의 붓은 더디기만 했습니다. 그는 붉은 동백꽃 한 송이를 앞에 두고, 눈을 감은 채 오랜 시간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할 무렵, 그가 마침내 붓을 들었습니다. 그의 붓은 꽃이 아니라, 꽃 주변의 공기, 시간의 흐름, 그리고 빛의 입자를 그리는 듯했습니다. 마침내 그림이 완성되었을 때,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화선지 위에는 분명 동백꽃 한 송이가 그려져 있었지만, 그 꽃은 보는 각도에 따라 이제 막 피어나는 듯 보이다가도, 이내 시들어 바닥에 떨어지는 환영까지 보이는, 살아있는 그림이었던 것입니다. 대결은 진현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지만, 사람들은 그를 경외하면서도 두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집 앞에는 요기를 막는다며 소금이 뿌려졌고, 사람들은 그가 사는 인왕산 기슭을 불길하다며 피해 갔습니다.
그렇게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 갈수록, 진현과 영롱의 사랑은 더욱 깊고 애틋해졌습니다. 바깥세상의 손가락질과 수군거림은, 그들의 초가집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서로만이 유일한 세상이자, 완벽한 피난처였습니다. 그들은 밤마다 서로의 몸을 탐하며, 세상의 모든 시름을 잊었습니다. 진현은 영롱의 빛나는 몸 구석구석에 자신의 사랑을 새기듯 입을 맞추었고, 그녀의 신비로운 신음 소리는 그의 예술에 끊임없는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대의 몸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소. 아니, 세상의 그 어떤 그림도 그대의 아름다움을 전부 담아낼 수는 없겠지.” 그의 찬사에, 영롱은 그의 품에 더 깊이 파고들며 속삭였습니다. “이 몸이 아름다운 것은, 오직 당신의 눈에 비쳤을 때뿐입니다. 당신의 사랑이, 나를 이 세상에서 가장 눈부신 존재로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들의 사랑은 완전무결해 보였지만, 영롱의 마음속에는 이미 불길한 예감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습니다. 하늘의 시간이, 자신을 부르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하늘의 부름
계절이 두어 번 바뀌고, 진현과 영롱의 사랑은 더욱 깊어졌지만, 진현의 마음속 불안은 날이 갈수록 짙어졌습니다. 영롱의 몸에서도 이상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몸에서 이따금씩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고, 잠을 자는 동안에는 몸이 공중으로 살짝 떠오르는 기이한 일도 벌어졌습니다. 그녀는 점점 인간의 음식을 멀리했고,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그녀의 기억이 돌아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진현에게 하늘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곳에는 슬픔도, 기쁨도, 죽음도 없는, 영원한 평온만이 존재하는 세상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어두웠습니다. “나는 이제 그곳이 그립지 않습니다. 당신과 함께 느끼는 이 찰나의 슬픔과 기쁨이, 천계의 영원한 평온보다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고백에 진현은 그녀를 굳게 끌어안았지만, 그의 심장은 차갑게 식어갔습니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곧 떠나야 할 시간이 온다는 의미였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운명의 날이 찾아왔습니다. 그날은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이 맑았지만, 대낮부터 별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기이한 날이었습니다. 진현과 영롱이 마루에 앉아 불안한 듯 하늘을 보고 있을 때, 갑자기 집 주위로 눈부신 오색 광채가 비추며, 하늘로부터 신비로운 음악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잠시 후, 옥으로 만든 갑옷을 입고 칼을 든 천상사자(天上使者)의 무리가 빛과 함께 마당으로 내려섰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위엄으로 가득 차 있었고, 인간 세상의 것이 아닌 압도적인 기운에 진현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천사장이 영롱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습니다. “옥황상제님의 명을 받들고 왔나이다. 천도 복숭아를 관리하는 선녀 영롱은, 지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천계의 법도를 어긴 죄로 잠시 인간 세상에 유배되었으니, 이제 그 형기가 다하였으매 즉시 하늘로 복귀하라.” 그제야 진현은 모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기억을 잃은 것이 아니라, 죄의 대가로 기억을 봉인당한 채 지상으로 쫓겨난 선녀였던 것입니다.
천상사자들은 영롱에게 다가가, 그녀를 데려가려 했습니다. 진현은 미친 듯이 그들의 앞을 막아섰습니다. “안되오! 영롱은 내 아내요! 내게서 그녀를 데려갈 수 없소!” 그는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인간의 힘으로는 그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습니다. 천사장이 손을 가볍게 휘젓자, 진현의 몸은 투명한 벽에 막힌 듯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어리석은 필멸자여. 천인과 인간은 본디 길이 다른 법. 네놈이 감히 천녀를 더럽히고 세상의 이치를 어지럽힌 죄, 그 또한 가볍지 않다.” 그때, 영롱이 천사장의 앞을 막아서며 말했습니다. “그를 탓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은 저의 선택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저에게 사랑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당신들이 사는 영원의 세상에서는 결코 알 수 없는, 가장 고귀한 감정을 말입니다.” 그녀의 당당한 모습에 천사장도 잠시 말을 잃었습니다. 진현은 절망감에 울부짖었습니다. “내 모든 것을 드리겠소! 내 재주, 내 명성, 내 목숨까지 다 드릴 테니, 제발 영롱만은… 영롱만은 내 곁에 있게 해주시오!” 그의 절규에 천사장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운명은 거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녀가 이곳에 더 머무른다면, 뒤틀린 인과율로 인해 이 땅에 가뭄과 역병이 창궐하게 될 것이다. 네가 사랑하는 이 세상과 백성을 지키고 싶다면, 그녀를 놓아주어라.” 그것은 너무나도 잔인한 선택이었습니다.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세상을 버릴 것인가, 아니면 세상을 위해 자신의 심장을 도려낼 것인가. 진현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 눈물의 이별
모든 것을 체념한 채 절망에 빠진 진현을 보며, 영롱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녀는 천상사자들에게 간청했습니다. “부디… 마지막 작별의 시간을 하루만 허락해주십시오. 제가 사랑했던 이 인간에게, 마지막으로 남기고픈 선물이 있나이다.” 그녀의 애절한 모습에, 천상사자들은 잠시 상의하더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좋다. 내일 이 시간에 다시 오겠다. 허나 그 이상은 아니 될 것이다.” 그 말을 남기고, 두 사자는 다시 빛과 함께 하늘로 사라졌습니다. 진현과 영롱에게는 단 하루의 시간만이 남았습니다. 그날 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끌어안았습니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서로의 몸을 탐했습니다. 그것은 욕망이 아닌, 서로의 존재를 자신의 영혼에 새기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습니다. 그는 그녀의 몸 구석구석에 입을 맞추며, 그녀의 모든 것을 기억하려 애썼고, 그녀는 그의 몸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며, 필멸의 존재가 주는 유한한 온기를 마지막으로 느꼈습니다.
동이 트기 전, 영롱은 진현을 이끌고 화실로 향했습니다. 그녀는 그에게 마지막 그림을 그려달라 청했습니다. “우리의 모습을 그려주세요. 하늘과 땅이 갈라놓아도, 영원히 함께할 우리의 모습을.” 진현은 떨리는 손으로 붓을 들었습니다. 그는 영롱과 자신이, 밤하늘의 은하수 속에서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붓질을 할 때마다, 영롱은 그의 뒤에서 그를 끌어안고 자신의 기운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림이 완성되어갈수록, 놀랍게도 화선지 위에서 진짜 별빛이 반짝이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그림이 완성되었을 때, 그녀는 그의 두 눈에, 자신의 입술을 가만히 가져다 대었습니다. “진현… 당신은 나에게 필멸의 존재가 느끼는 사랑의 기쁨과 슬픔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 대가로, 나는 당신에게 영원의 눈을 선물하겠나이다. 당신은 이제, 세상 만물의 본질과 그 안에 깃든 영혼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눈에 보이는 세상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저 하늘의 제가 볼 수 있도록, 영원히 그려주세요.” 그것이 그녀가 그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자, 마지막 약속이었습니다.
이윽고 약속된 시간이 되자, 하늘에서 다시 오색 광채가 내려왔습니다. 영롱의 몸이 서서히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그녀의 몸은 투명한 빛으로 변해갔습니다. “사랑합니다… 나의 필멸자여…” 그녀의 마지막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메아리쳤습니다. 진현은 손을 뻗어 그녀를 잡으려 했지만, 그의 손에 잡힌 것은 부서지는 햇살뿐이었습니다. 그녀는 눈부신 빛 한 줄기가 되어, 하늘의 별들 사이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홀로 남은 진현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목 놓아 울었습니다. 그 후, 김진현은 평생 홀로 살며 그림만을 그렸습니다. 그의 그림은 더 이상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그가 그린 그림에서는 빛과 소리가 느껴졌고, 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신필(神筆)’이라 부르며 경외했습니다. 그는 평생 동안 오직 한 여인의 모습만을 그렸지만, 그 어떤 그림도 그녀의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온전히 담아내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가 숨을 거두던 날 밤, 하늘에서 유난히 크고 영롱한 별 하나가 떨어졌다고 전해집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인간과 선녀의 꿈결처럼 아름답고도 슬픈 사랑 이야기, 어떻게 들으셨나요? 비록 함께할 수는 없었지만, 서로에게 영원한 영감이 되어준 두 사람. 여러분에게도 그런 잊을 수 없는 인연이 있나요? 저희 이야기가 마음에 드셨다면, 구독과 좋아요로 다음 이야기를 응원해주십시오. 다음 시간에는 기이하고도 섬뜩한 미스터리, 《조선시대 기이전》 속의 【두 개의 그림자】 이야기로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분명 혼자인데, 그림자는 둘이었다면… 과연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