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례를 마친 신부의 기적
저승사자의 배려, 혼례를 마친 신부의 기적 – 『패관잡기』
첫날밤이 마지막 밤이 될 뻔한 신부, 저승사자가 문밖에서 기다려준 기막힌 사연. "새벽닭이 울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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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300자)
"오늘 밤이... 제 마지막 밤이옵니다." 혼례날, 관속에 들어갈 운명이었던 신부 '연화'. 그녀의 앞에 나타난 저승사자는 명부를 보더니 딱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새벽닭이 울기 전까지, 신부의 '의무'를 다하라." 그날 밤, 신방(新房)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디스크립션 (300자)
조선시대, 골골대던 처녀 '연화'가 혼례날 쓰러져 저승사자를 마주합니다. "처녀귀신(손각시)이 되면 저승의 법도가 어지러워지니, 새벽닭이 울 때까지 신랑과 합방(合邦)을 마치라." 저승사자의 기묘한 배려. 하지만 그 첫날밤, 신랑의 뜨거운 '양기'가 신부의 운명을 통째로 뒤바꾸기 시작하는데...
※ 골골대는 '냉병(冷病)' 환자 연화.
조선 경상도 땅, 안동(安東) 고을에 '연화'라는 처녀가 있었습니다. 이름처럼 고운 얼굴이었으나, 안타깝게도 몸이 병약했지요. 어릴 적부터 '냉병(冷病)'이라 불리는, 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지는 병을 앓아왔습니다. 용하다는 의원을 다 찾아다녔지만, "몸에 음기(陰氣)가 너무 강해, 양기(陽氣)가 버티질 못한다. 스무 살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다"라는 절망적인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습니다. 연화의 부모는 딸이 언제 죽을지 몰라, 혼사(婚事)는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연화 자신도 체념한 지 오래였지요. 밤마다 제 얼음장 같은 손발을 주무르며, '나는 사내가 주는 따뜻한 사랑 한 번 못 받아보고 죽겠구나' 하며 눈물짓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고을에 한양에서 낙향한 '서 진사'라는 젊은 선비가 찾아옵니다. 그는 글공부를 위해 안동의 서원을 찾았다가, 강가에서 홀로 그림을 그리던 연화를 보고 첫눈에 반하고 말았습니다. 서 진사는 튼실한 황소처럼 기골이 장대하고,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熱氣)가 대단한 사내였습니다. 그는 연화의 창백한 얼굴과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가녀린 모습에 오히려 더 마음이 끌렸습니다.
"낭자. 낯빛이... 몹시 창백하십니다. 혹, 어디 편찮으신 겐지..." 서 진사의 우렁차면서도 다정한 목소리에, 연화는 처음으로 가슴이 '뜨끔'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녀는 제 병을 숨기고 말았습니다. "그저... 춘곤증인가 봅니다."
두 사람은 그날 이후, 몰래 만나며 사랑을 키워나갔습니다. 이상하게도 연화는 서 진사와 함께 있을 때만큼은, 뼛속까지 시렸던 한기(寒氣)가 조금 가시는 듯했습니다. 서 진사의 뜨거운 손이 제 손을 감싸 쥘 때면, 마치 아랫목 구들장에 손을 댄 듯 온몸이 노곤해졌지요. "낭자. 그대의 손이 이리 찹니다. 이리... 내 품에 안겨보시오." 서 진사가 그녀를 와락 끌어안으면, 연화는 그의 우람한 가슴팍에서 전해오는 후끈한 열기에 정신이 아찔해지곤 했습니다. '아아... 사내의 몸이 이토록 뜨거운 것이었구나...' 그녀는 본능적으로, 이 사내의 '양기(陽氣)'가 자신을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서 진사가 연화의 집에 청혼을 넣었습니다. 연화의 부모는 "우리 딸은... 곧 죽을 목숨입니다. 진사님의 앞길을 막을 수 없습니다"라며 눈물로 사정했지만, 서 진사의 고집은 꺾을 수 없었습니다. "장인, 장모님! 제가 연화 낭자를 지킬 것입니다! 제 이 뜨거운 기운으로, 낭자의 냉병을 몰아낼 것입니다!"
연화 역시, 이대로 죽으나 사랑하는 님과 혼례를 올리고 죽으나 매한가지라 생각했습니다. '단 하루라도... 저분의 아내가 되어, 저 뜨거운 품에 안겨볼 수만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 그녀의 간절한 눈빛에, 부모는 결국 혼례를 허락하고야 말았습니다. 그렇게, 연화의 나이 열여덟. 그녀의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르는 혼례 날짜가 잡혔습니다.
※ 혼례식 당일.
혼례날이 밝았습니다. 안동 고을 전체가 잔치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신부 대기실에 앉아있는 연화의 얼굴은, 하얀 분(粉)을 덕지덕지 발랐음에도 불구하고 창호지장처럼 파리했습니다. "아가... 괜찮겠느냐..." 어미가 눈물을 글썽이며 물었지만, 연화는 애써 미소를 지었습니다. "어머니. 오늘은 제 생애 가장 기쁜 날입니다. 연지곤지(臙脂臙脂)가 있으니,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그녀는 어젯밤, 유난히 혹독한 한기(寒氣)에 시달려 뜬눈으로 밤을 샜습니다. 몸은 천근만근이었고, 심장은 얼음덩이를 문 듯 차가웠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정신력으로 버텼습니다. '서방님... 서방님 얼굴만 보면... 괜찮아질 것이야.'
드디어 혼례가 시작되었습니다. 연화는 수모(手母)들의 부축을 받아 겨우 걸음을 옮겼습니다. 저 멀리, 활활 타오르는 불꽃 같은 붉은 관복을 입은 서 진사가 보였습니다. 서 진사는 긴장과 흥분으로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힐끗 훔쳐본 연화의 모습에 '아, 저리도 고울까...' 하며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연화 역시, 서방님의 그 늠름하고 '뜨거워 보이는' 기상에 잠시 한기를 잊는 듯했습니다.
절차가 하나하나 진행되었습니다. 전안례(奠雁禮), 교배례(交拜禮)... 연화는 쓰러질 듯한 몸을 간신히 가누며, 서 진사와 절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녀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습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드디어 모든 예식이 끝나고, 신랑 신부가 신방(新房)으로 향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서 진사는 기쁨에 넘쳐, 먼저 신방으로 가 연화를 기다렸습니다. '이제... 저 여인이 온전히 나의 것이 되는구나. 저 차가운 손을, 내 뜨거운 몸으로 밤새 녹여주리라.' 그는 신방에 차려진 '합근례(合巹禮)' 상을 보며, 오늘 밤 아내가 될 연화의 야들야들한 속살을 떠올리며 군침을 삼켰습니다.
그때였습니다. 하인들의 부축을 받으며 신방 문턱을 넘으려던 연화가, "서... 서방님..." 하는 외마디 소리와 함께,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습니다. "연화야!" 서 진사가 뛰어나와 그녀를 안아 들었지만, 연화의 몸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습니다. 숨이... 멎어가고 있었습니다.
"의원을 불러라! 어서!" 집안은 순식간에 잔칫집에서 초상집으로 변했습니다. 서 진사는 싸늘해진 연화를 끌어안고 "안 돼! 연화야! 눈을 떠! 내가... 내가 아직 너를 안아보지도 못했단 말이다!"라며 절규했습니다. 그리고 그 난리 통에, 혼절한 연화의 영혼 곁으로, 검은 도포를 입은 한 사내가 조용히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 기절한 연화의 앞에 나타난 저승사자
"허어... 이 무슨... 이게 무슨..." 연화의 영혼은 자신의 몸에서 쏙 빠져나와, 대성통곡하는 서 진사와 울부짖는 가족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방금 전까지 뼛속을 파고들던 그 지독한 한기(寒氣)는 사라졌지만, 몸은 깃털처럼 가벼워 현실감이 없었습니다. "서방님... 어머니... 저 여기 있어요..." 그녀가 손을 뻗어보았지만, 아무도 그녀를 보지도, 듣지도 못했습니다.
그때, 등 뒤에서 나직하고도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승에 미련 두지 마라. 때가 되었다."
연화가 화들짝 놀라 돌아본 곳에는, 칠흑 같은 갓을 쓰고 창백한 얼굴을 한 저승사자가 서 있었습니다. 그는 손에 붉은 글씨가 쓰인 명부(名簿)를 들고 있었습니다. "안동 사는 이연화. 향년 열여덟. 오늘 밤 자시(子時)에 명이 다하였으니, 나를 따라오너라."
연화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아... 안 됩니다! 사자님, 제발... 제발 이대로는 못 갑니다!" 그녀는 저승사자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애원하기 시작했습니다. "보시다시피... 저는 오늘 막 혼례를 올렸습니다. 아직... 아직 제 낭군님과... 첫날밤도... 합근주(合巹酒) 한 잔 못 나누었단 말입니다!"
저승사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연화를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는 수천 년간 이런 영혼들을 수없이 봐왔기에, 일말의 동요도 없어 보였습니다. "시끄럽다. 명부(名簿)에 적힌 대로 집행할 뿐. 네놈의 사정 따위는 염라대왕 전(殿)에 가서나 하소연하거라."
"아니옵니다! 사자님!" 연화는 필사적으로 외쳤습니다. "이대로... 이대로 가면... 저는... 저는 '손각시(처녀귀신)'가 됩니다! 사내의 '양기' 한 번 못 받아보고 죽은 원귀(怨鬼)가 된단 말입니다! 제발... 제발 저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연화는 '손각시'가 얼마나 무섭고 한(恨)이 많은 귀신이 되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죽어서도 이승을 떠돌며, 다른 처녀들의 혼례를 방해하고, 젊은 사내들을 괴롭히는... 그런 끔찍한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서 진사에게 원한을 품는 귀신이 될까 봐 두려웠습니다.
"사자님... 제발... 단 하룻밤만... 아니, 단 한 시진(時辰)만이라도 시간을 주십시오! 제 낭군님과 '아내'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저승길에 오르겠습니다. 네?"
연화의 피맺힌 절규에, 저승사자의 미간이 꿈틀했습니다. 그는 '손각시'라는 말을 듣자, 잠시 명부를 넘겨보았습니다. 저승에도 법도(法度)가 있는 법. '손각시'나 '몽달귀신(총각귀신)'처럼, 이승에서 '음양(陰陽)의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죽은 영혼들은, 그 한(恨)이 너무 깊어 저승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염라대왕 역시, 이런 원귀들이 생겨나는 것을 몹시 골치 아파했지요.
저승사자는 명부의 가장 뒷장, '특별 법규' 항목을 훑어보았습니다. [제 7항: 혼례 당일 명(命)이 다한 처녀가 '손각시'가 될 위기에 처했을 시, 저승사자는 망자(亡者)가 '합방(合邦)의 의무'를 다할 때까지 집행을 유예할 수 있다. 단, 그 기한은 첫새벽닭이 울기 전까지로 한다.]
저승사자는 '쯧' 하고
혀를 찼습니다. "허어... 귀찮게 되었군. 이런 규정이 다 있었나."
※ 연화의 애원. "이대로 가면 '손각시'가 됩니다."
저승사자는 명부를 탁 덮더니, 낭패스럽다는 표정으로 연화를 내려다보았습니다. "네년의 운이 좋은 건지, 내 운이 사나운 건지... 좋다. 저승의 법도에 따라, 네게 시간을 주겠다."
연화의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사, 사자님! 참으로..."
"허나, 기한은 '첫새벽닭이 울기 전까지'다." 저승사자는 차갑게 말을 잘랐습니다. "그전까지, 네 낭군과 '합방의 의무'를 완수하거라. 만약 새벽닭이 울 때까지 네가 여전히 '처녀'의 몸이라면, 나는 규율 위반으로 벌을 받게 되고... 너는 그 자리에서 '손각시'보다 더 지독한 악귀(惡鬼)가 되어 구천을 떠돌게 될 것이다. 알겠느냐?"
"네! 네! 사자님! 명심하겠습니다!" 연화는 거듭 절을 했습니다.
"흥. 그럼 시작해라." 저승사자는 연화의 영혼을 향해 손짓했습니다. 연화의 영혼은 빛처럼 빨려 들어가, 싸늘하게 식어있던 자신의 육신 속으로 '쏙' 하고 들어갔습니다.
"커... 커헉!"
"여, 연화야!" 연화를 끌어안고 오열하던 서 진사의 귀에, 가느다란 기침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가 고개를 들자, 죽은 줄 알았던 연화가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눈을 뜨고 있었습니다. "서... 서방님..."
"오오! 하, 하늘이... 하늘이 도우셨다! 연화가 깨어났다!" 집안은 다시 한번 발칵 뒤집혔습니다. 의원은 "맥이... 맥이 돌아왔습니다! 이럴 수가! 기적입니다!"라며 혀를 내둘렀습니다. 연화의 부모는 "부처님, 신령님"을 외치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서 진사는 그 누구보다 기뻤습니다. "연화야! 내 연화!" 그는 아내를 번쩍 안아 들고, 곧장 신방(新房)으로 향했습니다. "모두 물러가시오! 내 아내는... 그저 혼례가 고되어 잠시 기절했던 것이오! 오늘 밤, 나와 내 아내의 첫날밤을 방해하지 마시오!"
서 진사는 낭자하게 촛불이 켜진 신방에 연화를 조심스럽게 눕혔습니다. 연화는 아직 몸이 떨렸지만, 아까와 같은 뼛속의 한기는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저, '살아있다'는 감각과, '시간이 없다'는 초조함만이 그녀를 감쌌습니다.
"서방님..." 연화가 서 진사의 손을 잡았습니다. 서 진사는 아내의 손이 여전히 차가운 것을 느끼고는, 제 두툼하고 뜨거운 손으로 아내의 손을 감싸 쥐었습니다. "괜찮소, 연화. 내가... 내가 당신을 덥혀줄 것이오. 오늘 밤새도록..."
두 사람은 말없이 합근례(合巹禮) 상에 놓인 표주박 잔에 술을 따라 나누어 마셨습니다. 연화는 술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서 진사의 뜨거운 눈빛 때문인지, 창백했던 뺨이 발그레하게 달아올랐습니다. '시간이... 시간이 없어... 새벽닭이 울기 전에...'
※ 기적처럼 깨어난 연화.
합근례(合巹禮)의 마지막 잔이 비워지고, 서 진사는 촛불을 단 하나만 남기고 방 안의 촛불을 모두 껐습니다. 방 안의 공기는 순식간에 농밀해졌습니다. 어스름한 촛불 아래,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와, 연화의 몸에서 나는 은은한 분(粉) 냄새, 그리고 서 진사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방 안의 냉기마저 밀어내는 듯한 뜨거운 '사내의 열기'가 뒤섞여 공기를 후끈하게 달구기 시작했습니다. 연화는 덜덜 떨리는 손을 감추었습니다. 그것은 추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새벽닭이 울기 전에...' 저승사자의 그 서늘한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맴돌았습니다. 그녀는 이 밤이 자신의 '처녀'로서의 마지막 밤이자, '인생'의 마지막 밤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습니다.
서 진사는 그런 아내의 복잡한 속도 모르고, 그저 첫날밤의 벅찬 흥분과, 죽음의 문턱에서 아내를 되찾았다는 기쁨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그는 조심스럽지만 뜨거운 손길로 연화의 무거운 족두리를 벗겨내고, 칠흑같이 검고 비단 같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습니다. "연화... 나의 아내... 참으로... 참으로 곱소." 그의 목소리는 잔뜩 잠겨 있었습니다.
그의 손길이 연화의 붉은 활옷(闊衣) 고름으로 향했습니다. 연화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남편의 손길에, 수줍음과 함께 형언할 수 없는 서글픔이 밀려와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그녀의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습니다. "서방님..." "쉬이... 괜찮소. 놀라지 마시오. 이제 우린 부부요."
서 진사의 손은 글을 읽던 선비의 손이었으나, 그 안에 담긴 열기는 마치 대장간의 불꽃처럼 뜨거웠습니다. 그의 손이 닿는 곳마다, 연화의 얼음장 같던 살결이 '파르르' 떨리며, 마치 가뭄에 단비가 내리듯, 혹은 언 땅에 봄눈이 녹아들듯 미약한 온기가 퍼져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활옷이 벗겨지고, 겹겹의 속치마가 스르르 풀려나가, 마침내 순백의 비단 속적삼과 속곳(속바지)만 남았습니다. 서 진사는 아내의 가녀린 어깨와, 얇은 속적삼 너머로 봉긋하게 솟아오른, 한 번도 사내의 손길이 닿지 않았을 그 부드러운 봉우리의 윤곽을 보며, 마른 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숨이... 막혔습니다. "아..."
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앓던 냉병을 잊게 할 만큼 뜨거운 입술로 연화의 차가운 입술을 덮쳤습니다. 연화는 '아!' 하는 짧은 신음과 함께, 남편의 목을 끌어안았습니다. '이것이... 이것이 사내의 것이구나... 이토록 뜨겁고... 이토록 강하구나...' 그녀의 몸은 마치 꽁꽁 얼어붙었던 폭포수가, 거대한 불덩이를 만나 녹아내리는 듯했습니다.
연화는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수줍어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남편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녀는 이 밤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서 진사의 모든 것을 제 몸에, 제 영혼에 새기려 했습니다. '이 온기... 이 감촉... 저승에 가서도 잊지 않으리라.' 서 진사는 그런 아내의 반응에, 그녀의 냉병 따위는 까맣게 잊고, '아내가 나를 이토록 원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더욱 흥분했습니다. "연화... 당신도... 당신도 나를 원했소? 그렇소?" 그는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며 아내의 속적삼 고름을 단숨에 풀었습니다.
드디어, 십팔 년간 그 어떤 사내의 시선도 허락하지 않았던, 연화의 얼음장 같이 희고 차가운 속살이, 어스름한 촛불 아래 그 눈부신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서 진사는 그 순결하고도 완벽한 광경에 잠시 숨을 멈추었다가, 이내 자신의 뜨거운 몸으로 아내의 차가운 몸을 덮었습니다.
"아...!"
연화의 입에서 터져 나온 것은 고통이 아닌,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열기(熱氣)'에 대한 놀라움이었습니다. 그녀의 몸을 평생 옥죄던, 지독한 '음기(陰氣)'와 '냉병(冷病)'이, 서 진사의 활화산 같은 '양기(陽氣)'와 정면으로 부딪혔습니다. 연화의 몸은 마치 차가운 쇠가 용광로에 들어간 듯, '치이익' 하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서방님... 아... 뜨겁습니다... 너무...!" 그녀는 서 진사의 떡 벌어진 등 근육을, 부서져라 손톱으로 꽉 움켜쥐었습니다.
서 진사는 아내의 그 반응을 '첫 경험의 희열'로 오해하고, 더욱 거칠게, 그리고 더욱 깊숙이 그녀를 탐했습니다. "연화... 나의 연화... 당신을... 당신을 내 이 불꽃으로 아주 녹여버릴 것이오!" 신방(新房)은 두 남녀가 뿜어내는 열기와, 그들이 만들어내는 끈적한 소리로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연화는 고통과 쾌감, 그리고 '살아있음'을 느끼며 정신없이 남편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대로... 이대로 새벽이 오지 않기를...' 그녀는 이 밤이 영원히 끝나지 않기만을 바랐습니다.
※ 새벽닭이 울고, 저승사자가 다시 나타난다.
얼마나 격렬한 시간이 흘렀을까. 마치 폭풍우가 지나간 바다처럼, 방 안의 공기는 끈적하고 뜨거운 열기만 남긴 채 잠잠해졌습니다. 두 사람은 땀에 흠뻑 젖은 채, 서로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거친 숨을 골랐습니다. 연화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 손발이, 아니, 온몸이 '따뜻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뼛속까지 파고들던 그 지독한 한기(寒氣)는 온데간데없고, 마치 뜨거운 약물(藥物)에 온몸을 푹 담근 듯 노곤하고 따뜻했습니다.
그녀는 가만히 자신의 발가락을 꼼지락거려 보았습니다. 늘 감각조차 없이 차갑던 발끝에서, 뜨거운 피가 '쿵, 쿵' 하고 뛰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서 진사의 뜨거운 '양기(陽氣)', 그 생명(生命)의 정수(精髓)가 그녀의 몸속 가장 깊은 곳, 냉병의 근원이었던 차가운 자궁(子宮)까지 스며들어, 얼어붙었던 혈관과 기맥(氣脈)을 모조리 녹여버린 것 같았습니다. '아... 이것이... 이것이 부부의 정이구나... 이것이 사내의 힘이구나...'
서 진사 역시 지쳤지만,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아내의 젖은 이마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연화. 이제 당신의 손이... 내 손보다 더 뜨겁소. 하하." 그는 아내의 냉병이 나았다고는 생각지 못하고, 그저 '사랑의 열기'가 잠시 추위를 잊게 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는 벅찬 가슴으로, 솜털처럼 가벼워진, 아니, 이제는 '따뜻해진' 아내를 끌어안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연화는 차마 잠들 수 없었습니다. 곤히 잠든 남편의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았습니다. '비록 하룻밤의 꿈이었지만... 저는 이제 여한이 없습니다. 서방님의 아내로, 서방님의 그 뜨거운 '양기'를 품고... '손각시'가 아닌, 당당한 '지어미'로 떠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잠든 남편의 뺨에, 감사의 마음을 담아 마지막 입맞춤을 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저 멀리, 어둠을 찢는 날카로운 소리. "꼬끼오오오! 꼬끼오!" 첫새벽닭의 울음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습니다.
연화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습니다. '아... 시간이... 시간이 되었구나. 올 것이 왔어.' 그녀는 조용히 이불을 여미고, 눈을 감았습니다. 남편이 깨지 않기만을 바라며, 저승사자를 기다렸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굳게 닫힌 신방 문이 '스르르' 소리 없이 열리더니, 어둠 속에서 저승사자 '김 사자'가 핼쑥한 얼굴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방 안을 가득 채운, 남녀의 '뜨거운 향기'와 '양기'에 미간을 찌푸리더니, 연화를 향해 말했습니다.
"첫닭이 울었다. 방 안이 아주 덥구나. 의무는... 다한 모양이지? 이제 약속대로 가야 한다."
연화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네, 사자님. 이 모든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이제... '손각시'가 되지 않고, 떳떳하게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영혼이 몸에서 스르르 빠져나오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어...?" 저승사자가 갑자기 '억!' 하는 소리를 냈습니다. 그가 들고 있던 명부(名簿)에서, 연기가 '피식' 하고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 이게 무슨! 뜨거워!"
저승사자가 명부를 펼치자, '이연화(李蓮花)'라고 적혀있던 그녀의 이름 세 글자가, 마치 젖은 나무에 불이 붙듯... '치이이익' 하는 소리를 내며 검게 타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이럴 수가! 명부가... 명부가 불타고 있다!" 저승사자는 당황하여 불붙은 명부를 바닥에 '탁' 떨어뜨렸습니다. "어찌 이런 일이! 네년... 네년이 무슨 흉계를 부린 것이냐! 이승의 물건도 아닌 이 명부가!"
연화도 어리둥절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저... 저는... 그저... 사자님의 말씀대로... 서방님과..."
저승사자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방구들을 굴러다니는, 불타는 명부와, 침상에 누워있는 연화의 '육신'을 번갈아 뚫어져라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무릎을 '탁' 쳤습니다. "아! '양기(陽氣)'...! 저 사내의 '양기'로구나!"
그는 연화의 몸을 보았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얼음장 같던 '음기'의 결정체였던 연화의 몸이, 지금은 마치 활활 타오르는 화로(火爐)처럼 뜨거운 '양기'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룻밤 사이에 서 진사에게서 받아들인, 순수하고 강력한 '생명(生命)의 양기', 즉 '정기(精氣)'였습니다.
"네년의... 네년의 '냉병(冷病)'이... 저 사내의 '정기'에 하룻밤 만에 녹아버렸구나! 네 운명은 '냉병'으로 죽는 것이었는데, 그 병이 사라졌으니... 운명 자체가 바뀐 것이다!"
저승사자는 자신의 명부가 까맣게 재가 되어 사라지는 것을 허망하게 바라보았습니다. 그녀의 '죽을 운명' 자체가, 남편과의 뜨거운 첫날밤으로 인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아이고... 내 팔자야..." 저승사자는 머리를 쥐어뜯었습니다. "내가... 내가 저승 법도 따지다가... '손각시' 안 만들려다가... 염라대왕 님께 데려갈 영혼을... 내 손으로 살려내 버렸네! 아이고, 이 시말서(始末書)를 어찌 쓴단 말이냐! '신랑의 양기가 너무 세서 영혼이 타버렸다'고 써야 하나!" 그는 억울하다는 듯 연화를 쏘아보더니, "에잇, 모르겠다! 네년! 아주 보란 듯이 뜨겁게 잘 먹고 잘 살아라! 다시는... 다시는 네 앞에 나타나나 봐라!" 하는 말을 남기고는, 재가 되어버린 명부만 남긴 채,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습니다.
※ '냉병'이 씻은 듯 낫고 건강을 되찾은 연화.
저승사자가 사라진 방 안. 연화는 한동안 멍하니 앉아있었습니다. 방바닥에는 정말로, 종이가 타다 만 듯한 검은 재가 남아있었습니다. '사... 살아난... 건가? 내가...?' 그녀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창백하고 핏기 없던 손이, 이제는 건강한 복숭앗빛으로 발그레하게 변해 있었습니다. 뼛속까지 시렸던 한기는 완벽하게 사라지고, 온몸이 따뜻한 기운으로 충만했습니다. '춥지 않아... 정말 춥지 않아!'
"으음..." 바로 그때, 곁에서 곤히 자던 남편 서 진사가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는 눈을 뜨자마자, 아내가 또다시 쓰러졌을까 봐, 혹은 간밤의 일이 꿈이었을까 봐 덜컥 겁이 났습니다. "연화야...!"
그는 아내를 불렀고, 연화는 이 세상에서 가장 환한 미소로 그를 돌아보았습니다. 서 진사는 아내의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어젯밤 혼절하기 직전의, 창백하고 위태롭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마치 이슬을 머금고 막 피어난 작약꽃처럼 생기가 넘쳤기 때문입니다.
"당신... 당신 얼굴이...!"
"서방님..." 연화는 와락 남편의 품에 안겼습니다. 그녀는 저승사자와의 기묘했던 하룻밤 거래에 대해서는 차마 하지 못하고, 그저 눈물만 흘렸습니다. "서방님... 저... 저 이제 춥지가 않아요... 정말로 하나도... 춥지가 않아요! 서방님의 그... 그 뜨거움이... 저를 살렸나 봐요! 서방님 덕분이에요!"
서 진사는 그제야 아내의 지병이었던 '냉병'이, 자신과의 '첫날밤'으로 인해 씻은 듯 나았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습니다. "오오... 연화야! 나의 연화! 신령님이... 신령님이 우리를 도우셨구나!" 그는 아내를 꽉 끌어안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앞으로... 백 년 동안, 매일 밤... 내가 당신을 이렇게 뜨겁게... 따뜻하게 지켜줘야겠소!"
두 사람은 그날 아침, 창호지를 뚫고 들어오는 눈부신 햇살 아래, 다시 한번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습니다. 이번에는 '의무'나 '죽음'에 쫓겨서가 아닌, 순수한 '삶'과 '사랑'의 열기였습니다. 서 진사는 아내의 생기 넘치는 붉은 입술을 보며, "닭은 이미 울었지만... 우리의 아침은 이제 시작이오, 부인."이라며, 다시금 아내를 이불 속으로 끌어당겼습니다.
그 후, 연화는 '냉병'에서 완벽하게 해방되었습니다. 스무 살을 못 넘길 거라던 그녀는, 남편 서 진사와 함께 구십 평생을 해로했습니다. 두 사람의 금실은 어찌나 좋았던지, 마치 첫날밤의 열기가 식지 않은 것처럼 늘 뜨거웠으며, '양기'가 충만한, 아비(父)를 닮아 튼실한 아들딸을 일곱이나 낳아 다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이는 모두, '손각시'의 한(恨)을 두려워하여 신부에게 하룻밤의 '의무'를 허락했던 저승사자의 기묘한 '배려'가 낳은, 기적 같은 해피엔딩이었습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이야기, 재미있게 들으셨는지요?
죽음의 문턱에서, 저승사자의 '배려' 아닌 '배려'로
새 생명을 얻게 된 신부 연화의 이야기.
참으로 기묘하고도 흐뭇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죽음이라는 거대한 운명조차도,
남녀 간의 뜨거운 '사랑'과 '생명의 기운' 앞에서는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요?
차가운 '음기'는 뜨거운 '양기'로 녹여내듯,
어르신들의 삶에 혹시라도 시린 구석이 있다면,
오늘 밤, 서로의 온기로 그곳을 따뜻하게
데워주시길 바라봅니다.
다음에도 더 재미있고 구수한 옛날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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