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황소가 멈춰 선 자리가 명당

황금 인생 21 2026. 4. 7. 20:41
반응형

황소가 멈춰 선 자리가 명당

그 자리에 묘를 쓰자 벌어진 소름돋는 반전

태그 (15개)

#풍수, #명당, #황소, #상여, #장례, #묘자리, #지관, #효자, #조선, #야담, #발복, #가문, #풍수지리, #전승, #염라야담
#풍수 #명당 #황소 #상여 #장례 #묘자리 #지관 #효자 #조선 #야담 #발복 #가문 #풍수지리 #전승 #염라야담

후킹멘트

여러분, 소가 길을 가다 딱 멈춰 서서 아무리 때려도, 달래도, 끌어도 꿈쩍을 안 한 적이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그것도 아버지의 상여를 싣고 가던 황소가, 산길 한복판에서 네 발을 땅에 박고 눈을 부릅뜨고 버틴 겁니다. 상주는 울고, 조문객은 당황하고, 온 동네가 발칵 뒤집혔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훗날 지나가던 도승이 그 자리를 보더니 무릎을 탁 치며 이렇게 말합니다. "이 자리는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대명당이오!" 과연 그 묘를 쓴 뒤 가문에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오늘 염라야담에서 들려드리는 이야기, 황소가 멈춰 선 자리가 명당이었다. 끝까지 들어보시면 등골이 서늘하면서도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실 겁니다.

※ 1: 가난하지만 효심 깊은 아들 박달수, 병든 아버지를 극진히 모시다

충청도 깊은 산골, 고을 이름조차 제대로 불리지 않는 궁벽한 마을이 하나 있었다. 산이 병풍처럼 둘러치고, 앞으로는 실개천이 졸졸 흘러 논배미 서너 마지기가 전부인 곳. 그 마을 끝자락, 흙벽에 짚 이엉을 얹은 초가 한 채가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흔들 위태롭게 서 있었다.

그 집에 박달수라는 사내가 살았다. 나이 서른다섯. 키가 장대 같고 어깨가 떡 벌어졌으나, 살림살이는 바닥을 기고 또 기어서 더 이상 내려갈 데가 없었다. 아내는 삼 년 전 역병에 먼저 세상을 떴고, 슬하에 열 살배기 아들 돌이 하나가 전부였다. 달수에게 남은 거라곤 병든 아버지와 마른 황소 한 마리, 그리고 논배미 한 마지기뿐이었다.

'아버지, 오늘은 좀 어떠십니까.'

달수는 매일 새벽이면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아버지의 이마를 닦았다. 늙은 아버지 박씨 어른은 지난겨울부터 기침이 그치질 않더니 봄이 와도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손이 이불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달수야... 네가 고생이 많다."

"무슨 말씀을 그리 하십니까. 아버지 낫게 해드리는 게 자식 된 도리 아닙니까."

"이 아비가 건강했으면 네 짐을 덜어줄 텐데... 쓸모없는 늙은이가 되어버렸구나."

"아버지, 그런 말씀 마십시오. 아버지가 계시는 것만으로도 이 집에 기둥이 서는 겁니다."

달수는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들킬세라 고개를 돌렸다. 부엌으로 가서 솥에 남은 잡곡죽을 퍼 왔다. 제대로 된 쌀죽은 엄두도 못 냈다. 조와 수수를 섞어 끓인 묽은 죽이었으나, 달수는 그 안에 산에서 캐 온 더덕 뿌리를 잘게 썰어 넣었다. 약이 될까 싶어서였다.

"아버지, 천천히 드십시오."

숟가락을 들어 아버지 입에 죽을 떠 넣는 달수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아버지의 볼이 날이 갈수록 꺼져가는 게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이웃에 사는 김 초시가 울타리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달수야, 오늘도 산에 안 가느냐? 나무를 해다 팔아야 쌀이라도 살 게 아니냐."

"예, 아버지 죽 드시고 나면 바로 가겠습니다."

"쯧쯧, 자네 효심은 이 골짜기에서 둘째가라면 서럽지만, 효도도 살아야 하는 거 아니겠나. 약이라도 지어 올 돈은 있나?"

달수는 대답 대신 쓴웃음만 지었다. 약값은커녕 내일 끼니조차 막막했다. 그래도 달수는 매일 새벽마다 뒷산에 올라 약초를 캤다. 혹시 아버지 병에 듣는 풀이 있을까 싶어서였다. 산삼은 꿈도 못 꾸고, 칡뿌리라도 캐면 다행이었다.

'아버지만 나으시면 된다. 내가 좀 고생하면 어떠랴.'

그날 밤, 달수는 아버지 곁에 누워 아버지의 거친 숨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했다. 쌕쌕거리는 그 숨소리가 끊길까 봐 무서웠다. 한밤중에 아버지가 심하게 기침을 하면 벌떡 일어나 등을 쓸어드렸다. 열 살배기 돌이도 잠결에 깨어 할아버지 손을 꼭 잡았다.

"아부지, 할아버지 괜찮을 거지예?"

"그럼, 괜찮고말고. 할아버지는 강한 분이시다."

달수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으나, 속으로는 까마득했다. 이 겨울만 넘기면, 봄만 오면 나으실 거라 믿었건만, 봄꽃이 지고 여름이 문턱에 들어서도 아버지의 병세는 나아지질 않았다. 오히려 깊어만 갔다.

마을 어귀 느티나무 아래서 노인들이 수군거렸다.

"박씨 어른이 이번 여름은 못 넘기실 것 같다더라."

"달수 그 녀석, 가난해도 효성 하나는 지극하지. 아비 병시중에 제 몸이 먼저 상하겠어."

"쯧, 하늘이 무심하지. 착한 놈한테 왜 저리 시련만 주는겨."

바람이 느티나무 이파리를 흔들었고, 여름 햇살 아래 매미가 목청껏 울어댔다. 달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산길을 올랐다. 등에는 지게를 지고, 마음에는 천근만근 짐을 얹은 채.

※ 2: 아버지의 임종과 장례 준비, 묘자리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다

그해 유월, 찌는 듯한 무더위가 산골짜기를 내리눌렀다. 공기가 물처럼 끈적하게 들러붙는 어느 저녁이었다. 달수가 나무를 해서 돌아오니 아버지가 달수를 불렀다. 그 목소리가 이상하리만치 맑았다.

"달수야, 가까이 와 보거라."

"예, 아버지."

달수가 아버지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아버지의 눈이 형형했다. 며칠째 죽도 못 넘기던 분이 갑자기 눈에 힘이 돌아오니, 달수는 반가우면서도 등줄기가 싸늘해졌다. 회광반조라는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

"달수야, 내 이제 갈 때가 된 것 같다."

"아버지, 무슨 말씀을..."

"듣거라. 네게 남겨줄 재산은 없다만, 하나 당부할 게 있다."

아버지의 마른 손이 달수의 손을 더듬어 잡았다. 놀랍도록 차가웠다.

"나를 묻을 때, 마당의 그 황소에게 맡겨라."

"예? 그게 무슨..."

"소가 가는 대로 따라가거라. 소가 멈추는 자리에 나를 묻어다오. 꼭이다."

달수는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찌 장례를 소한테 맡기라는 것인가. 그러나 아버지의 눈빛이 너무도 진지하여 차마 되묻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아버지. 그리 하겠습니다."

아버지가 희미하게 웃었다. 그것이 마지막 미소였다. 그날 밤 삼경, 아버지 박씨 어른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달수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있는 사이, 거친 숨소리가 점점 가늘어지더니 이윽고 고요해졌다.

"아버지... 아버지!"

달수의 울음이 초가의 어둠을 가르고 산골짜기에 메아리쳤다. 돌이가 잠에서 깨어 할아버지 곁으로 기어와 엉엉 울었다. 그 울음소리에 이웃집 김 초시가 달려왔고, 곧 마을에 소식이 퍼졌다.

이튿날부터 장례 준비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달수에겐 돈이 없었다. 관을 짤 나무는 김 초시가 자기 집 뒤란의 소나무를 베어 내주었고, 마을 사람들이 품앗이로 관을 짜주었다. 삼베 수의는 아내가 살아 있을 때 짜둔 것이 광 구석에 남아 있어 그것을 꺼냈다.

문제는 묘자리였다.

"달수야, 묘 자리는 잡았느냐?"

마을 이장이 물었다. 달수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입니다. 지관을 부를 돈이 없습니다."

"지관 없이 아무 데나 묻을 수는 없는 법이다. 산 임자한테 허락도 받아야 하고, 자리도 봐야지."

'아버지가 황소에게 맡기라 하셨는데, 그 말을 어찌 꺼내나.'

달수는 아버지의 유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으나, 그 말을 꺼내면 미친놈 소리를 들을 것이 뻔했다. 장례를 소한테 맡기다니, 세상에 그런 법도가 어디 있단 말인가.

사흘째 되는 날, 마을의 늙은 최 훈장이 달수를 찾아왔다.

"달수야, 네 아비가 생전에 나한테 한 말이 있다."

"무슨 말씀이셨습니까?"

"자기가 죽거든 황소에게 맡기라 했다더구나. 너한테도 그리 말했느냐?"

"예... 그리 하셨습니다."

최 훈장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한참을 생각하더니 말했다.

"네 아비가 젊었을 적에 이인을 만난 적이 있다. 운명이 기구하나 후대에 크게 발복할 상이라는 말을 들었다더라. 소가 멈추는 자리가 명당이라는 뜻일 수도 있겠구나."

"훈장 어른, 정말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글쎄다. 풍수라는 게 사람의 지혜로 다 헤아릴 수 있는 게 아니니. 짐승이 사람보다 땅의 기운을 더 잘 느낀다는 말이 예부터 있었다."

달수는 아버지의 유언을 따르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소한테 묘자리를 맡기다니, 기가 차서 원."

"가난이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더니, 딱 그 꼴이로군."

"에이, 내버려 두게. 저도 아비 잃은 슬픔에 정신이 없는 게야."

수군거림이 등 뒤에서 따라붙었으나 달수는 이를 악물었다. 아버지의 마지막 부탁이었다. 그것만은 지키고 싶었다.

※ 3: 상여를 실은 황소가 산길 중턱에서 갑자기 멈춰 서다

발인날 새벽, 안개가 자욱했다. 산골짜기를 우유빛 안개가 가득 메우고 있었다. 달수는 새벽같이 일어나 황소에게 여물을 먹이고 등을 쓸어주었다. 누렁이라 부르는 이 황소는 달수네 집에 온 지 십 년이 넘은 늙은 소였다. 뿔이 크고 눈이 순했으며, 아버지가 특히 아끼던 소였다.

"누렁아, 오늘 네가 아버지를 모시고 가야 한다. 아버지가 너한테 맡기라 하셨다."

소가 커다란 눈으로 달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치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라도 하는 듯했다.

관을 구르마에 실었다. 제대로 된 상여는 엄두도 못 내고, 나무 구르마 위에 관을 올려 밧줄로 단단히 묶었다. 그 구르마를 황소 등에 연결했다.

마을 사람 대여섯이 따라나섰다. 김 초시, 최 훈장, 이장, 그리고 이웃 장정 몇이 지게에 삽과 곡괭이를 지고 뒤를 따랐다. 돌이는 아버지 손을 꼭 잡고 걸었다.

"자, 가자, 누렁아."

달수가 고삐를 잡고 앞장섰다. 그런데 묘한 일이 벌어졌다. 달수가 마을 뒤편 야산 쪽으로 고삐를 끌었건만, 황소는 고개를 돌려 엉뚱한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마을 앞을 지나 개울을 건너더니, 맞은편 큰 산 쪽으로 성큼성큼 나아갔다.

"어, 어이! 누렁아, 이쪽이 아니라니까!"

달수가 고삐를 당겼으나 소는 꿈쩍도 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갔다. 힘이 얼마나 센지, 장정 하나가 매달려도 소는 태연히 걸음을 옮겼다.

"아니, 저 소가 왜 저러나?"

"길을 잘못 든 거 아냐? 고삐를 세게 잡아당겨!"

김 초시와 장정 하나가 더 달라붙어 고삐를 잡아끌었으나 소용이 없었다. 황소는 마치 누군가의 인도를 받는 것처럼 일정한 걸음으로 산길을 올랐다. 좁은 오솔길이었다. 양쪽으로 참나무와 소나무가 우거져 하늘이 보이지 않았고, 풀벌레 소리만 귀를 가득 채웠다.

"달수야, 저 소가 어디로 가는 거냐?"

이장이 이마의 땀을 닦으며 물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지 유언대로 소가 가는 대로 따라가는 겁니다."

"허, 참..."

한 시진쯤 산길을 올랐을까. 산중턱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황소가 우뚝 멈춰 섰다. 네 발을 땅에 박은 듯 딱 멈추더니, 코를 벌렁거리며 낮은 소리로 음매 하고 울었다. 그 울음소리가 기이했다. 슬프기도 하고, 장엄하기도 한 울음이었다.

"누렁아, 왜 그러느냐? 가자!"

달수가 고삐를 잡아끌었다. 소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엉덩이를 밀어도, 등짝을 두드려도, 소는 네 발을 땅에 못 박은 듯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달수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묘한 자리였다. 산중턱의 작은 평지. 뒤로는 산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감싸고 있었고, 앞으로는 골짜기가 탁 트여 멀리 들판이 내려다보였다. 왼쪽과 오른쪽으로 낮은 능선이 마치 팔을 벌려 감싸 안는 형상이었다. 바람이 불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자리만은 바람이 잔잔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울타리가 바람을 막아주는 것 같았다.

"여기가 어딘가?"

김 초시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 산에 수십 년을 살았어도 이런 자리가 있는 줄 몰랐네."

최 훈장이 사방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늙은 훈장의 눈이 빛났다.

"달수야, 좀 보거라. 뒤의 산세가 의자처럼 감싸고, 앞이 탁 트였다. 좌청룡 우백호 형국이 아닌가. 내 풍수를 깊이 아는 건 아니나, 이 자리가 예사롭지 않구나."

"훈장 어른, 정녕 그렇습니까?"

"소가 괜히 여기서 멈춘 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 순간,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아침 해가 산 너머로 떠올라 황금빛 볕이 그 자리를 비추었다. 소의 등 위에 실린 관이 황금빛에 물들었고, 지켜보던 사람들 사이에서 탄성이 새어 나왔다.

"어, 저것 좀 봐."

"해가 딱 이 자리를 비추는 게 아닌가."

소름이 돋는 광경이었다. 마치 하늘이 이 자리를 가리키는 것 같았다. 달수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아버지, 이 자리입니까. 아버지가 이리로 이끄신 겁니까.'

※ 4: 온갖 방법을 써도 황소가 움직이지 않자, 할 수 없이 그 자리에 묘를 쓰다

그러나 감동은 잠시, 현실 문제가 앞을 가로막았다. 이 산은 마을 공동 소유였으나, 아무 데나 묘를 쓸 수는 없는 법이었다. 게다가 지관도 부르지 않고 소가 멈춘 자리에 묘를 쓴다?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반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아니다. 지관도 없이 소가 멈춘 데다 묘를 쓴다니."

이장이 팔짱을 꼈다.

"법도가 있고 예법이 있는 거야. 만에 하나 흉지라도 되면 어쩔 텐가? 가뜩이나 마을에 안 좋은 일이 많은데."

"이장님, 저도 아는 바가 없지 않습니다. 허나 아버지의 유언이었습니다. 소가 멈추는 자리에 묻어달라 하셨습니다."

달수가 두 손을 모아 절을 했다. 목소리가 떨렸으나 눈빛은 단단했다.

"제발 허락해 주십시오. 이 불효자가 아버지 마지막 소원 하나 들어드리지 못하면 평생 죄인으로 살겠습니다."

이장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따라온 사람들의 의견도 갈렸다. 김 초시는 달수 편이었고, 장정 하나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때 최 훈장이 나섰다.

"이장, 내 한 말씀 올리겠네. 풍수라는 게 원래 땅의 기운을 읽는 것이 아닌가.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짐승이 느끼는 경우가 있다는 걸 옛 어른들도 말씀하셨네. 더구나 이 자리를 보게. 배산임수에 좌청룡 우백호, 혈자리가 아니면 이런 지세가 어디 있겠나."

"훈장 어른이 풍수를 아시오?"

"깊이는 모르네만, 책에서 읽은 바가 있지. 이 정도 형국이면 지관이 와도 고개를 끄덕일 자리야."

이장이 한참을 망설였다. 황소는 여전히 꿈쩍도 않고 네 발을 땅에 박은 채 서 있었다. 한두 번 더 끌어보기도 했으나 소는 성난 듯 코를 벌름거리며 버텼다. 마치 여기가 아니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달수야, 한 가지 더 해보자. 소를 돌려세워 봐라. 만약 정말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하늘의 뜻으로 여기고 허락하마."

달수가 고삐를 잡고 온 힘을 다해 소를 돌려세우려 했다. 장정 셋이 더 붙었다. 넷이서 밀고 당기고 했으나 황소는 바위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 단단히 버티며 음매 하고 길게 울었다.

그 울음소리가 산골짜기에 울려 퍼졌다.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는 그 소리에 사람들이 묘한 전율을 느꼈다.

"알았다, 알았어. 여기에 묘를 쓰도록 하라."

이장이 한숨을 쉬며 허락했다. 달수가 다시 한 번 깊이 절했다.

"감사합니다, 이장님.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장정들이 곡괭이와 삽을 들어 땅을 팠다. 그런데 또 한 번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겉은 풀과 잡목으로 덮여 있었으나, 삽이 들어가자 흙이 놀라울 정도로 부드러웠다. 돌멩이 하나 없이 고운 황토가 쏟아졌다. 보통 산에서 묘 자리를 파면 돌뿌리에 걸리고 나무뿌리에 막혀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이 자리는 마치 미리 준비된 것처럼 흙이 고왔다.

"야, 이거 좀 봐. 흙이 마치 기름진 반죽 같아."

"돌이 하나도 없어. 이런 땅은 처음 보는데."

김 초시가 흙을 한 움큼 쥐어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흙이야. 묘 자리로 이만한 흙이 없어. 물이 잘 빠지고 관이 편히 누울 자리로구먼."

한 시진이 채 안 되어 자리가 마련되었다. 달수가 관을 구르마에서 내려 정성껏 묘혈에 모셨다. 관이 내려가는 순간, 황소가 또 한 번 길게 울었다. 이번에는 작별을 고하는 듯한 구슬픈 울음이었다.

"아버지, 편히 쉬십시오."

달수가 흙을 한 삽 한 삽 덮을 때마다 눈물이 흙 위에 떨어졌다. 돌이도 작은 손으로 흙을 한 줌 쥐어 관 위에 뿌렸다.

"할아버지, 안녕히 계세요..."

봉분을 다 올리고 나니,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묘 앞에서 달수가 절을 올리는 동안, 황소는 비로소 걸음을 옮겨 묘 옆의 풀밭에 가서 풀을 뜯기 시작했다. 마치 할 일을 다 마쳤다는 듯 평온한 모습이었다.

"저 소 좀 봐. 이제야 움직이네."

"참, 기이한 일도 다 있어."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하며 산을 내려왔다. 달수는 마지막까지 묘 앞에 남아 아버지와 한참을 있다가, 돌이의 손을 잡고 천천히 내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아버지의 묘 위로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아버지, 저 잘 살겠습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 5: 마을 사람들의 비웃음과 달수의 불안한 나날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달수를 맞이한 것은 고요한 빈집과 마을 사람들의 수군거림이었다. 아버지가 떠난 자리, 아버지가 누워 계시던 방에는 아직 약 냄새가 희미하게 배어 있었다. 달수는 텅 빈 방에 멍하니 앉아 한참을 보냈다. 돌이가 아버지 무릎 위로 기어와 앉았다.

"아부지, 배고파요."

"그래, 밥 해줄게."

달수는 아들을 위해 일어섰다.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살아 있는 사람은 살아야 했다. 부엌에 가니 쌀독이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남은 조 한 줌을 긁어모아 죽을 쑤었다. 아버지 드시라고 더덕 넣어 끓이던 그 솥에, 이제는 아들 먹일 죽을 끓이고 있자니 코끝이 시큰거렸다.

'아버지, 보고 싶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마을에 소문이 퍼졌다. 박달수가 지관도 없이 황소가 멈춘 자리에 아버지 묘를 썼다는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점점 부풀어 올랐다.

"거 들었소? 달수 그 녀석이 소한테 묘자리를 잡게 했다면서?"

"허허, 사람이 가난하면 귀신도 못 부리고 소한테 빈다더니, 딱 그 꼴이야."

장터 주막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사내들이 낄낄거렸다. 그중에서도 가장 목소리가 큰 것은 마을 아래쪽에 사는 조 부자였다. 논 스무 마지기에 기와집을 가진 조 부자는 평소에도 달수를 깔보았다.

"내가 묘 쓸 때는 삼 년을 공들여 이름난 지관을 모셔다 자리를 잡았는데, 그 가난뱅이는 소한테 맡겼다고? 참으로 웃기는 세상이야. 그 자리가 명당이면 내 성을 갈겠네."

조 부자의 비웃음에 주변 사람들도 따라 웃었다.

"맞아, 맞아. 소가 명당을 안다면 지관이 뭣 하러 있겠소."

"그 소가 거기 멈춘 건 다리가 아파서 그런 거 아녔을까? 늙은 소가 산길을 오르다 지친 거지, 뭐."

"하하하, 그 말이 맞을 거야!"

그 소문은 달수의 귀에도 들어왔다. 장터에 나무를 팔러 갔다가 등 뒤에서 킥킥거리는 웃음소리를 들었다. 모른 척했으나 가슴에 못이 박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달수가 진정 두려운 것은 비웃음이 아니었다. 혹시 정말 흉지에 아버지를 모신 것은 아닌지, 아버지께 불효를 저지른 것은 아닌지, 그 불안이 밤마다 달수를 괴롭혔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 이어졌다. 뒤척이다 뒤척이다 새벽녘에 겨우 눈을 붙이면 꿈에 아버지가 나타났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웃고만 계셨다. 그 꿈이 위안이 되기도 하고 더 불안하게 만들기도 했다.

'아버지, 제가 잘한 겁니까? 소가 멈춘 자리에 모신 것이 옳은 일이었습니까.'

꿈속의 아버지는 대답 대신 손을 들어 산 쪽을 가리켰다. 묘가 있는 방향이었다. 달수가 무슨 뜻이냐 물으려 하면 꿈은 사라지고, 눈을 뜨면 어김없이 서늘한 새벽이었다.

보름이 지나고 한 달이 흘렀다. 달수의 살림은 더 쪼그라들었다. 아버지 장례에 있던 것도 없던 것도 다 쏟아부었으니 남은 것이라곤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황소 누렁이마저 팔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아버지의 소임을 다한 소를 차마 팔 수 없어 포기했다.

대신 달수는 더 이를 악물고 일했다. 새벽에 산에 올라 나무를 하고, 낮에는 남의 논에 가서 품을 팔고, 저녁에는 짚신을 삼아 장터에 내다 팔았다. 돌이도 아버지를 도와 나뭇가지를 줍고 나물을 캤다. 열 살배기가 어른 못지않게 일했다.

"아부지, 나도 빨리 커서 아부지 도울게요."

"그래, 우리 돌이는 착하구나."

달수가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으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가을이 오면 추수를 해야 하는데, 논 한 마지기에서 나오는 쌀이라야 겨우 두어 가마. 겨울을 날 수 있을지 막막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달수가 아버지 산소에 올라갔다. 벌초를 하려는 것이었다. 낫을 들고 산길을 오르는데, 묘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묘 주변의 풀이 유난히 푸르고 싱싱했다. 주위는 가뭄에 풀이 누렇게 말라가고 있었건만, 아버지 묘 둘레만은 마치 비를 흠뻑 맞은 듯 파릇파릇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묘 앞의 작은 평지에 이름 모를 들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 노란 꽃, 보라 꽃, 하얀 꽃이 어우러져 마치 누군가 일부러 가꾼 화원 같았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달수는 넋을 잃고 서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부드럽고 따스한 바람이었다. 그 바람에 실려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달수야, 걱정 말거라."

"아버지...?"

돌아보았으나 아무도 없었다. 바람만 묘 위의 풀을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다. 달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묘를 바라보았다. 불안은 여전했으나, 마음 한구석에 작은 온기가 피어올랐다.

'아버지가 편히 계신 거겠지. 이 자리가 아버지한테 좋은 자리인 거겠지.'

달수는 정성껏 풀을 깎고 묘를 단정히 한 뒤 산을 내려왔다. 그 발걸음이 올라갈 때보다는 한결 가벼웠다.

※ 6: 지나가던 도승이 묘 자리를 보고 대명당임을 알려주다

가을이 깊어가던 어느 날이었다. 산에 단풍이 물들고 찬바람이 옷깃을 세울 무렵, 마을에 낯선 이가 나타났다. 삼베 장삼에 삿갓을 쓰고, 한 손에 지팡이, 한 손에 염주를 든 노승이었다. 머리카락은 하얗고 눈썹이 길었으며, 걸음걸이는 느리되 흔들림이 없었다. 나이는 가늠하기 어려웠으나 일흔은 넘어 보였다.

노승은 마을 어귀 우물가에서 물을 한 바가지 마시고는 산을 올려다보았다. 한참을 가만히 서서 산세를 살피더니,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허, 이 산에 기운이 예사롭지 않구나. 혈이 맺힌 자리가 있는 듯한데..."

마침 우물에 물을 길러 온 김 초시가 노승을 보았다.

"스님, 어디서 오시는 길입니까?"

"남쪽에서 올라오는 길이오. 이 골짜기를 지나가려 했는데, 산세가 범상치 않아 걸음을 멈추었소."

"산세가 범상치 않다니요?"

노승이 산을 가리켰다.

"저 산의 줄기가 용이 몸을 틀어 엎드린 형국이오. 와룡형이라 하는데, 산이 기운을 품고 있소. 혹시 저 산 중턱에 묘가 있지 않소?"

김 초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예, 있습니다. 올여름에 마을의 박달수라는 사람이 아버지를 거기에 모셨습니다."

"그 자리를 어찌 잡았소?"

"그게... 황소가 상여를 싣고 가다가 거기서 멈춰 서서, 할 수 없이 그 자리에 묘를 썼습니다."

노승의 눈이 번쩍 빛났다. 노승은 잠시 고요히 서 있더니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소가 멈춘 자리라... 그 소가 혈을 찾은 것이오. 짐승이 사람보다 먼저 땅의 기운을 느끼는 법. 한번 올라가 볼 수 있겠소?"

김 초시가 곧장 달수를 불러왔다. 달수는 놀란 눈으로 노승을 맞이했다.

"스님, 저희 아버지 묘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문제가 아니라 확인하려는 것이오. 안내해 주시오."

셋이 산길을 올랐다. 노승은 나이에 맞지 않게 걸음이 빨랐다. 산 중턱에 이르자 노승의 걸음이 더욱 빨라지더니, 묘가 보이는 지점에서 우뚝 멈추었다.

노승이 묘와 주변 지세를 한참 살폈다. 동서남북을 둘러보고, 땅을 짚어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는 묘 앞의 흙을 한 줌 집어 코에 가져갔다. 흙 냄새를 맡고, 손가락 사이로 비벼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또 끄덕였다.

그러기를 반 시진. 마침내 노승이 입을 열었다.

"시주,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아시오?"

"모릅니다, 스님. 소가 멈춘 자리라 그냥..."

노승이 지팡이로 사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뒤를 보시오. 산의 주맥이 용의 등뼈처럼 내려오다 이 자리에서 기운을 모으고 있소. 이것을 입수라 하오. 좌측의 저 능선은 청룡이 고개를 숙이고 감싸는 형국이고, 우측 능선은 백호가 엎드려 지키는 형국이오. 앞의 골짜기가 탁 트이면서 멀리 물이 보이니, 이것이 명당수요."

달수는 노승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 고개를 돌렸으나 솔직히 무슨 말인지 잘 알 수 없었다.

"스님, 쉽게 말씀해 주십시오. 이 자리가 좋은 자리입니까, 나쁜 자리입니까?"

노승이 달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시주, 이 자리는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대명당이오."

"대... 명당이라고요?"

"오룡쟁주형이라 하여, 다섯 용이 구슬을 다투는 형국의 혈자리요. 이런 자리에 선친을 모셨으니, 삼 대 안에 귀한 인물이 나고 가문이 크게 일어날 것이오."

달수의 무릎이 풀렸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스님, 정녕... 정녕 그 말씀이 사실입니까?"

"이 늙은 중이 사십 년을 전국의 산천을 돌아다니며 땅의 이치를 살폈소. 이만한 혈자리는 손에 꼽을 정도요. 그 소가 보통 소가 아니었던 게야. 아니, 소가 비범한 것이 아니라 선친의 음덕이 소를 통해 이 자리로 인도한 것이오."

김 초시가 옆에서 연신 무릎을 쳤다.

"내가 그때 봤을 때도 예사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어! 달수야, 네 아버지가 하늘에서 너를 도우신 거야!"

달수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아버지 묘 앞에 엎드려 절을 하며 한참을 울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노승이 달수의 등을 가만히 두드리며 말했다.

"시주, 명당이란 효심 있는 자에게 찾아오는 법이오. 시주의 지극한 효성이 이 자리를 얻게 한 것이니, 앞으로도 그 마음을 잃지 마시오. 다만 한 가지 당부할 것이 있소."

"무엇입니까, 스님."

"이 묘를 함부로 떠벌리지 마시오. 명당이 알려지면 시기하는 자가 생기고, 묘를 해치려는 자가 나타날 수 있소. 조용히, 겸손히 사시오. 때가 되면 하늘이 알아서 복을 내릴 것이오."

달수가 깊이 고개를 숙였다. 노승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산을 내려갔다. 마을 어귀에서 삿갓을 고쳐 쓰고는 왔던 길로 다시 떠나갔다. 달수가 뒤를 쫓아 인사를 드리려 했으나 노승의 모습은 어느새 산모퉁이 너머로 사라지고 없었다.

※ 7: 가문에 잇따른 경사가 벌어지고, 비웃던 이들이 놀라다

그 뒤로 일 년이 흘렀다. 달수의 삶에 조금씩, 아주 조금씩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누구도 알아채지 못할 만큼 미미한 변화였다.

먼저, 논배미 한 마지기에서 그해 유난히 풍년이 들었다. 같은 물을 대고 같은 볕을 쬐었건만 달수의 논만 벼가 유독 굵고 이삭이 풍성했다. 가을에 거둬 보니 다른 해의 곱절이었다. 겨우 두 가마 나오던 논에서 네 가마가 넘게 쏟아졌다.

"올해 자네 논은 어찌 저리 잘됐나? 무슨 거름을 줬나?"

이웃 농부가 고개를 갸웃했으나 달수도 알 수 없었다. 딱히 다른 것을 한 게 없었다.

그 다음해 봄, 또 한 가지 일이 벌어졌다. 황소 누렁이가 송아지를 낳았다. 누렁이는 암소가 아니라 거세하지 않은 수소였으니 송아지를 낳을 리 없건만, 이 소가 이웃 마을 암소와 사이에서 튼실한 송아지를 얻은 것이었다. 그 송아지가 얼마나 크고 힘이 좋은지, 이웃 마을 부자가 높은 값에 사겠다고 찾아왔다.

"이 송아지 참 좋군. 제값을 쳐줄 테니 나한테 파시오."

그 돈으로 달수는 논을 한 마지기 더 샀다. 빚을 갚고도 남은 돈으로 돌이에게 새 옷을 해 입히고 서당에 보냈다. 돌이가 글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돌이라는 아이가 보통이 아니었다. 서당에 간 첫날부터 천자문을 줄줄 외우더니, 석 달 만에 또래 아이들을 모두 제쳤다. 훈장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이 아이는 타고난 재주가 있습니다. 제대로 가르치면 크게 될 아이입니다."

삼 년이 지나고 오 년이 지나자, 달수의 살림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논이 늘고, 소가 늘고, 짚 이엉이던 지붕에 기와를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이렇다 할 큰 행운이 한꺼번에 찾아온 것이 아니라, 작은 경사가 쉬지 않고 이어졌다. 달수가 장터에 내다 파는 꿀이 소문나 없어서 못 팔았고, 황소들이 해마다 건강한 새끼를 낳았으며, 가뭄이 들어 온 마을이 흉년인 해에도 달수의 논만은 물이 마르지 않았다.

"기이한 일이야. 박달수네만 왜 저리 잘되는 게야."

마을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예전의 비웃음이 어느덧 놀라움으로 바뀌어 있었다.

"설마... 그 황소가 멈춘 자리가 정말 명당이었던 건 아닐까?"

"에이, 그게 말이 되나. 우연이겠지."

그러나 우연이라 하기엔 일이 너무 꾸준히, 너무 뚜렷하게 벌어졌다. 결정적인 사건은 돌이가 열다섯 되던 해에 터졌다.

고을 원님이 신동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돌이를 불렀다. 시험 삼아 글제를 내었는데, 돌이의 답이 어찌나 명쾌하고 기개가 넘치던지 원님이 무릎을 탁 쳤다.

"이 아이를 묻어두면 안 되겠소. 한양으로 보내 크게 공부를 시키시오."

원님이 직접 추천장을 써 주었다. 달수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가난한 산골 아이가 한양으로 유학을 가게 된 것이다. 여비와 학비까지 원님이 보태주었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마을이 발칵 뒤집혔다. 가장 놀란 것은 그 조 부자였다.

"명당이면 성을 갈겠다고 했던 사람이 누구더라?"

김 초시가 빙그레 웃으며 한마디 던지자, 조 부자는 얼굴이 벌게져서 아무 말도 못 했다.

"그, 그때는 누가 알았나. 소가 멈춘 자리가 정말 명당일 줄이야..."

조 부자의 목소리가 모깃소리만 해졌다. 장터에서 달수를 비웃던 사내들도 하나둘 달수를 찾아와 말을 바꾸었다.

"달수야, 우리가 그때 몰라서 그랬다. 네 아버지가 대단한 분이셨어."

달수는 웃기만 했다. 원망도, 자랑도 하지 않았다. 노승의 당부대로 겸손히, 조용히 지냈다. 다만 명절마다, 그리고 매달 초하루에 어김없이 산에 올라 아버지 묘에 절을 올렸다. 황소 누렁이도 함께 데리고 올라갔다. 늙은 소는 묘 앞에 서면 여전히 음매 하고 한 번 길게 울었다.

"누렁아, 고맙다. 네가 아버지를 좋은 자리에 모셔주었구나."

달수가 소의 목을 안으며 속삭였다. 소가 커다란 눈으로 달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눈에 비친 가을 하늘이 한없이 높고 맑았다.

※ 8: 명당의 진정한 의미와 효심에 대한 깨달음

세월이 흘러 돌이는 스무 살에 과거에 급제했다. 산골의 가난한 농부 아들이 당당히 문과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던 날, 마을 어귀에서 산꼭대기까지 사람들이 줄을 지어 축하했다. 달수는 아버지 묘 앞에 엎드려 한참을 울었다.

"아버지, 돌이가 해냈습니다. 손자가 과거에 급제했습니다."

바람이 묘 위의 풀을 살랑 흔들었다. 마치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 같았다.

돌이는 벼슬길에 올라 고을의 수령이 되었다. 그런데 돌이가 비범한 것은 학문만이 아니었다. 그 아이는 아버지 달수에게서 물려받은 마음이 있었다. 백성을 제 부모 섬기듯 했고, 약한 자의 편에 서서 억울한 일을 바로잡았다. 고을 사람들이 돌이를 어버이처럼 따랐다.

"저분이 그 황소 명당의 후손이라지?"

"효자의 아들이 충신이 된다더니, 그 말이 딱 맞아."

돌이의 명성이 높아질수록, 달수네 가문은 더욱 융성했다. 돌이의 아들, 그러니까 달수의 손자는 훗날 높은 벼슬에 올라 나라에 큰 공을 세웠다. 삼 대에 걸쳐 어진 인물이 이어지니, 사람들은 이것이 다 그 명당의 덕이라 말했다.

그러나 달수는 알고 있었다. 명당이 복을 준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향한 마음이 명당을 만난 것이라는 사실을.

달수가 칠십을 넘긴 어느 가을날이었다. 머리가 하얗게 센 달수가 지팡이를 짚고 산에 올랐다. 옛날처럼 황소를 데리고 가고 싶었으나 누렁이는 몇 해 전 늙어서 세상을 떠났다. 달수는 누렁이도 아버지 묘 근처에 묻어주었다. 아버지를 명당으로 인도한 은인이니 마땅하다 여겼다.

묘 앞에 앉아 달수는 오래도록 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옛날 궁벽하기만 하던 마을은 제법 커져 있었고, 들판에는 황금빛 벼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먼 산 너머로 해가 천천히 기울고 있었다.

'아버지, 저도 이제 늙었습니다.'

달수는 아버지 묘에 기대앉아 조용히 눈을 감았다. 바람이 불었다. 예전 그 바람, 장례 날 안개가 걷히며 불어왔던 그 따스한 바람이었다.

그때, 달수의 귓가에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달수야, 수고 많았다."

달수가 미소를 지었다. 주름 가득한 얼굴에 평온한 미소가 번졌다.

이 이야기는 그 뒤로도 오래오래 전해졌다. 사람들은 황소가 멈춘 자리가 명당이었다는 기이한 사실에 주목했으나, 이야기를 깊이 들여다보면 핵심은 다른 데 있었다.

명당이란 무엇인가. 좋은 터, 복된 자리. 그러나 아무리 좋은 자리라 해도 거기에 모실 이를 지극한 마음으로 섬기지 않았다면, 그 자리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달수의 효심이 아버지를 명당으로 이끌었고, 그 효심이 대를 이어 어진 마음으로 꽃피었다. 땅이 복을 내린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땅의 기운을 깨운 것이다.

옛말에 이르기를, 적선지가 필유여경이라 했다. 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넉넉한 경사가 있다는 뜻이다. 황소가 멈춘 자리가 명당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명당은 달수의 가슴속에 있었다. 아버지를 향한 지극한 효심, 가난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성실함, 이웃을 원망하지 않는 너그러움. 그것이야말로 어떤 풍수도 흉내 낼 수 없는 진정한 명당이었다.

산바람이 분다. 묘 위의 풀이 살랑인다. 오래전 황소가 네 발을 박고 멈춰 섰던 그 자리, 지금도 그곳에는 따스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한다.

유튜브 엔딩멘트

오늘 염라야담에서 들려드린 이야기, 황소가 멈춰 선 자리가 명당이었다. 어떠셨습니까? 좋은 터를 얻는 것도 복이지만, 그 복을 부르는 건 결국 사람의 마음이었습니다. 여러분의 효심, 여러분의 따스한 마음 하나하나가 바로 명당입니다. 이 이야기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아요와 구독, 알림 설정까지 부탁드립니다. 다음 염라야담에서 또 소름 돋는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썸네일 이미지 프롬프트 (영어, 16:9, 실사, no text)

A photorealistic cinematic scene set in a misty Korean mountain valley during early morning golden hour. A large old yellowish-brown Korean native ox (Hanwoo) stands completely still on a narrow mountain trail, legs firmly planted, refusing to move. Behind the ox is a simple wooden cart carrying a traditional Korean coffin wrapped in white cloth and rope. A Korean man in his mid-thirties wearing worn white hanbok mourning clothes kneels beside the ox with a desperate expression, pulling the rope. Lush green mountainside surrounds them with soft fog rolling through the valley below. Dramatic golden sunlight breaks through the mist illuminating the exact spot where the ox stands. The composition emphasizes the ox's stubborn immovable stance contrasted with the ethereal mystical atmosphere of the mountain setting. Shot from a low angle, shallow depth of field, 16:9 aspect ratio, ultra-detailed, no text.

반응형